[과학을 읽다]물레방앗간과 칼국수, 그리고 나노기술

얇고 휘어지는 세상으로의 초대

▲반창고처럼 피부에 붙이는 나노소자는 정보파악, 저장, 진단, 치료까지 가능한 종합 시스템이다.[사진제공=미래부]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산골 곳곳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쿵쿵 거리며 보리와 밀을 빻았다. 처음 보리와 밀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질 정도로 컸지만 절구질을 계속하면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 마침내는 가루가 되고 만다. 끝내는 먼지가 돼 바람에 날려갈 정도로 작은 입자로 변한다. 이렇게 빻은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을 한다. 반죽을 하면 가루와 가루들은 다시 뭉쳐져 큰 덩어리가 된다. 그 덩어리를 홍두깨로 밀어 가능한 얇게 펴내는 기술이 맛있는 칼국수의 비법이다. 얼마나 얇게 밀어내느냐가 승부수이다. 밀면 밀수록 반죽은 더욱 가늘어져 나중에는 종이처럼 얇아진다. 끝내는 반대편 물체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박막을 형성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반죽을 밀어 얇은 박막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누가 그 기술을 책상에 앉혀놓고 물려준 것도 아닌데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원천 기술이었다. ◆나노 기술 선두자 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고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는 나노기술의 근본 원리가 바로 '물레방앗간'과 '반죽 밀기' 원리와 같다. 얼마나 작게, 얼마나 얇게 만드냐가 관건이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이란 것은 익히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빻아 가루를 만들게 하는 민족적 속성까지 결합하면서 미래 세계를 이끌 나노기술의 선두자로 나서고 있다. 나노(Nano)는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나노미터(nm)는 10억분의1m를 의미한다. 1nm는 따라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의 크기를 말한다. 보통 원자 3~4개가 들어간다. 나노는 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정밀한 세계이다. 현재 나노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어 우리나라와 일본, 독일이 그 뒤를 좇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TV,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물론 생체, 제약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곳에 나노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미래 산업의 모든 곳에 나노기술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이끌고 있다. 그동안 TV나 스마트폰 등은 덩치가 크고 고체 상태였다. 이들의 완제품을 뜯어보면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이 부품들은 다시 소자로 구성돼 있고 소자는 반도체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이들 제품의 시작점은 반도체에서 비롯된다. 이 반도체에 나노기술을 입히면 더욱 얇아지고 휘어지거나 구부릴 수도 있고 휴대까지 가능하다. 가지고 다니다 벽면에 부착하면 TV를 볼 수 있다. 얇고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휴대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나노기술이기에 가능하다. TV는 늘 거실에 있어야 하는 고정관념을 깨트린 것이다.◆나노 기술 적용 범위 확대 = 여기에 최근 나노기술은 새로운 치료방법에 까지 나서고 있다. 현대는 각종 질병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공간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반창고처럼 피부에 붙이는 나노소자를 개발했다. 이번에 개발된 웨어러블(입거나 피부에 붙이는) 나노소자는 특히 운동 장애(파킨슨병 등)를 가진 환자에게 붙여 실시간으로 정보 파악은 물론 약물을 직접 담고 있어 투여까지 가능하다.파킨슨병과 같은 운동 장애 질환의 발병 여부를 24시간 모니터링 해 측정 결과를 메모리에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의 패턴 분석을 통해 진단하고 필요할 때는 약물을 피부에 투여한다. 환자를 대상으로 '정보 파악→저장→진단→치료'에 이르는 통합 시스템인 것이다. 이런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배터리 수명 상 짧은 시간만 작동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개발된 나노소자는 전력소모도 적어 오랫동안 피부에 붙이고 있을 수 있다.해당 나노소자를 개발한 김대형 서울대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웨어러블 전자소자 개발 성과가 차세대 피부 부착형 헬스케어 전자 기기의 연구 개발을 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와 연동해 활용될 경우 원격 진료 등 새로운 시장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제품은 나노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노기술로 인해 딱딱한 고체 상태의 제품을 유연하고, 얇고, 휘고, 구부리고 하는 기능으로 대체한 것이다. 현택환 나노입자연구단장은 "우리나라의 나노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중"이라며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앞선 IT기술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된 피부에 붙이는 나노소자처럼 앞으로 이 분야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기능들이 앞 다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단장은 "미래 산업은 나노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곳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관련법과 제도 등에 대한 정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단장의 지적처럼 피부에 붙이는 나노소자를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이 나노소자에는 약물을 직접 담고 있다. 의약품과 관련된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노소자에 담는 약물의 안전성은 물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 여부 등도 불명확하다. 최근 원격 진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 속에서 상용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법과 제도적 문제가 있다. 앞서나가는 기술과 이에 따른 법과 제도적 문제가 정비된다면 앞으로 우리가 접할 미래는 나노기술로 인해 상상 이상의 세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플렉시블 기판 상에 옮겨진 금 나노 구조체.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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