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푼 덕양중학교 사례 '주목'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새학기를 코 앞에 둔 요즘 학교는 폭력 문제가 최대의 현안이다. 학생들 사이의 왕따 등 폭력은 물론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교사에 의한 학생 폭행 등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질 때마다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전학, 입학을 앞에 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칫 학교 폭력에 휘말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고 언어 폭력, 신체 폭력 등으로 나눠 징계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학교 폭력을 예방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나친 율법주의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처벌 보다는 반성과 성찰 위주로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줘 학교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도록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교육 현장에선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의 사례가 관심을 끌고 있다. 1일 참교육학부모회 발행 '학부모신문'과 경기도 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 중학교는 학교폭력예방법의 한계점과 명확히 인식해 가해자-피해자 패러다임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구성하는 대신 갈등 해결에 초점을 둔 학교생활회복위원회를 통해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를 가해자-피해자로 기계적으로 나눠 처벌하기 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정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등 8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학교 공동체를 회복하고, 아이들은 배움과 성장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2년부터 담당 교사에게 27시간 연수를 하도록 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화감수성교육과 또래조정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중학교는 선도위원회 대신 '평화서클'을 통해 학생들을 상담ㆍ치유하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문제가 있을 경우엔 부모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이 중학교에서 발생한 학교 폭력 사건 처리 과정을 잘 살펴보면 다른 학교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와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명의 아이가 평소 싫어하던 아이를 놀리던 중 놀림을 받던 아이가 화가 난 나머지 놀리던 아이를 때린 사건이었다. 이 경우 사실 가해자-피해자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기존의 학교폭력법에 따라 처리할 경우 때린 아이나 맞은 아이나 서로 할 말이 많다. 때린 아이는 형식상 가해자이긴 하지만 평소 상대방 아이에게 받았던 욕설과 놀림에 대해 '언어 폭력'이라며 "오히려 내가 피해자"라고 문제 삼을 수 있다. 맞은 아이 또한 '피해자'이면서도 평소 자신이 친구를 놀리고 욕한 것에 대해선 '가해자'자가 될 수 있다. 결국 학교와 교사 또한 이 사건의 당사자로 굴비 엮이듯 엮이게 되게 마련이고, 학생ㆍ교사ㆍ학부모들이 서로 갖게 되는 적대적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학교'라는 공동체가 더 이상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돼 본래의 역할인 사회적 가치의 전승ㆍ공동체 구성원 양성이라는 목표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중학교에선 학교생활회복위원회와 회복적 서클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의 행위를 되돌아 보고 반성해 갈등을 해소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지혜를 배우도록 했다. 위원회는 공동체적 중재 과정을 통해 자기 표현에 서툴고 한없이 긴장해 있던 학생들에게 '동의된 행동하기', '자기 책임지기', '상대방에게 부탁하기' 등 갈등 해소를 행동 요령을 가르쳤다. 긴장해 있던 학생들은 결국 마음을 열고 부모ㆍ교사들 앞에서 스스로의 문제와 상대방의 갈등을 정리하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줬다. 한 여학생이 체험활동 중 교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 수준의 말을 내뱉은 교권 침해 사건도 '회복적 생활 교육'의 관점에서 풀어냈다.다른 학교 같았으면 '선도위원회'가 열려 처벌ㆍ징계 또는 전학 등으로 학생의 인생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면서 마무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선도위원회가 아닌 '상담과 치유, 부모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서클'을 통해 이 학생을 치유시켰다. 담당 교사는 학생의 욕설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았으며, 숙소에 도착한 후 해당 학생을 불러 차분히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래도 반성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던 학생은 평화서클에 참여하도록 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개념없게 만 보였던 그 아이가 겪었던 과거의 상처와 아픔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상처, 함께 사는 아빠ㆍ할머니로부터 받은 언어적 폭력들이 있었던 것이다. 교사와 동료 학생들에게 그 아이는 더 이상 '나쁜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또 아이의 새엄마ㆍ친아빠를 대상으로 가족 치유도 시도했다. 자녀가 입은 상처에 마음아파하면서도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회복해야 할 지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부모들은 이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아이에게 사과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결국 다음날 학교에 나온 아이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졌고, 선생님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벌로 내려진 학내 봉사 활동도 성심껏 임했다. 애정결핍으로 늘 삐걱 거렸던 친구관계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이 학교 이병주 교사(학생인권부장)는 '학부모신문' 기고에서 "우리 어른들은 언론이 보도하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지레 겁을 먹고 아이들이 대화와 서클이라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며 "단지 처벌에 대한 위협과 가해자, 피해자라는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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