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뮤지컬 외길인생..'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포즈를 좀 취해주세요"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쏟아낸다.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힐끗 거리지만 이미 그런 시선은 안중에 없다는 듯 카메라에 몰입한다. 말을 건네기도 전에 넘치는 에너지가 절로 느껴진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44)은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걸 좋아했다"며 "길가다 누가 쳐다보면 '사진 찍어드릴까요?' 먼저 물어볼 정도"라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올해로 햇수로만 뮤지컬 인생 25년째인 최정원은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의 산 증인이다. "뮤지컬이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1990년대를 거쳐 뮤지컬 전성시대인 현재까지 웬만한 작품은 모두 최정원을 거쳐갔다.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럽게 뮤지컬계의 대모, 여제(女帝) 등의 수식어도 줄곧 따라다닌다. "25년을 한 눈 팔지 않고 쭉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뮤지컬은 내 인생이 걸린 일이다. 가끔 어떤 설문조사에서 1위를 했다며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렇지만 1위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남들이 나에게 최고라고 해도 내가 부끄럽다면 최고가 아닌 것이고,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 혼신의 힘을 다하면 그게 최고인 것이다. 그런 수식어는 고맙지만 나는 좋은 공연을 하는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 공연은 하면 할수록 재밌다."
현재 최정원이 하고 있는 작품은 '시카고'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2000년 처음으로 소개가 됐다. 최정원은 지난 10여년의 기간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매 시즌 '시카고'에 출연했다. 처음에는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매력적인 여죄수 '록시 하트' 역을 연기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한 물 간 '스타' 여죄수 '벨마 켈리' 역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투톱 주연인 이 작품에서 '록시 하트'역을 맡은 여배우는 많았지만 관록의 '벨마 켈리'역까지 캐스팅이 이어진 경우는 최정원이 유일하다. "브로드웨이에서 유명한 배우 치타 리베라는 60세까지 벨마 역으로 무대에 섰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처음에 벨마 역을 맡았을 때는 아쉽기도 하고, 팬들도 '록시' 역을 계속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역할을 다 해보니 오히려 전체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잘되는 부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또 후배들이 맡은 '록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조언을 할 수 있게 됐고. 난 무대 위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고 싶다."
뮤지컬 '시카고' 중에서..한국에서 '록시'역과 '벨마'역을 다 거친 배우는 최정원이 유일하다.
최정원은 타고난 체력도 체력이지만 공연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평상시 탄산음료나 몸에 좋지 않는 것은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를 라이브로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래를 하며 등산을 했다. 수영장에 가면 아예 잠수를 한 채로 수영장을 왔다갔다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로 춤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뮤지컬 '시카고'에서도 혼자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춤추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최정원은 힘든 기색도 없이 오히려 신나 보인다. "데뷔 초에는 베테랑 선배를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렇게 긴장하지 않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심장이 쿵쾅쿵쾅 떨린다. 첫 곡, 첫 대사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풀리는 식이다. 무대공포증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관객들이 오셨을까'하는 기분좋은 설렘이다. 미팅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오늘 어떤 상대방이 나올까 하는 것에 대한 떨림 말이다. 언젠가 내가 무대가 안떨리면 그때는 무대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조민서 기자 summer@사진=최우창 기자 smic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조민서 기자 summe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