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시설관리 넘어 '사람' 중심으로 주거質 높여야내년엔 '주거복지사' 자격증도 신설
이봉형 주택관리공단 사장
[대담=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주거복지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주거복지사' 자격증도 자체적으로 내놓으려 준비 중이다. 주택관리는 이제 단순한 시설 관리를 넘어 '사람'에 관심을 쏟고 '주거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주택관리를 복지로 인지해 지원하는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 이봉형 주택관리공단 사장이 처음부터 작심한 듯 힘줘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주거복지가 화두여서다. 주택공급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는 정책목표를 가졌던 시대는 이미 한물갔다. 집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던 세대는 줄어들고 자유롭게 집을 옮겨 다니며 살고 싶어 하는 '주택 노마드족'이 늘어난 영향이다. 이런 시류 속에 특히 일상생활을 독자적으로 하기 어려운 의지할 데 없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족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주택 지원 외에도 육체적 한계를 도와주거나 말벗을 해주는 일이 따라야 한다.이런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택을 관리하고 주거복지 업무까지 도맡는 기관이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산하 공기업 주택관리공단이다. LH가 직접 관리하는 주택 외에 전국 316개 아파트단지 26만2566가구는 주택관리공단이 시설관리부터 거주민 생활지원 서비스까지 해주고 있다. 법적으로는 '취약계층'이라 불리는 저소득자와 독거노인 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영구임대주택이 대표적이다. 공공ㆍ국민임대주택 일부도 공단의 관리대상 주택이다.◆70만명 입주민 거느린 시장님?= 공단이 관리하는 단지에 입주해있는 주민 수는 모두 70여만명. 이들의 일상의 삶, 주거의 질을 책임지는 웬만한 도시의 시장 격이다. 정작 그가 몸담은 공단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소재한 한 상가의 3층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본사 직원은 90명 남짓에 불과하다.초라하게 보이지만 공단이 하는 일은 작지 않다. 일반 아파트 관리회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노후한 시설 등을 정비할 뿐 아니라 입주민들의 복지까지 책임진다. 특히 총 관리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인 14만가구가 영구임대아파트다. 이들 대다수는 국가에서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받는 극빈층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이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여서 공단의 업무는 정해진 업무범위를 크게 뛰어넘는다. 그래서 CEO부터 주거복지를 강조한다.이봉형 사장은 "직원들이 관리소에서 하는 일의 30%가 입주민 상담 들어주고 형광등 갈아주는 등의 복지"라고 말했다. 실제 주택관리공단은 시설물을 유지관리하고 전기ㆍ수도료, 난방비 등의 관리비도 절감해주고 있다.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전담 직원을 연결해 밀착 보호하는 '관리홈닥터'와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한 '꿈나무 축구단'을 진행하고 있다. 육아지원 서비스, 참여형 커뮤니티 등도 기획했다. 이 사장은 "이외에도 직원들의 고충이 많다"며 "입주민 중 알코올 중독자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비율이 높은데 이들의 협박이나 하소연을 모두 들어주고 입주민들 집안의 사소한 일들도 모두 도와준다"고 했다. 이런 탓에 가끔 직원들이 '감정노동' 스트레스로 정신병원에 다니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이 사장은 추후 직원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사를 투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예전에 아파트 관리소장으로도 일해 봤고 지난해까지 LH 주거복지이사로 지냈지만 이 정도로 직원들이 복지업무에 매달리고 마음속으로 고통 받는 것은 몰랐다"고 털어놨다.◆노인의 고독사를 아시나요= 사실 공단이 복지일에 뛰어든 건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영구임대주택에 살던 한 노인의 '고독사(孤獨死)'가 몇 달간 방치된 사건이 있은 후 2004년 9월부터 '관리홈닥터'를 실시했다. 당시엔 요구르트만 하나씩 사들고 2주마다 각 가구를 방문했다. 보호가 필요한 입주민들은 동사무소와 연결하는 작업도 했다. 관리소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주민들의 사소한 요구까지 들어줬다. 1인가구 등 시대가 자연스레 변하자 '주거복지'에 대한 필요성도 커졌다. 공단의 복지 업무가 확대된 계기다. 일부 직원들은 복지 현장 일선에 있으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스스로 따기도 한다. 이런 직원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1년에 복지로 나가는 예산도 4억4000만원이다. 총 예산 208억원 중 인건비를 제외한 실제 경비는 68억원. 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6.5% 가량이다.이 사장은 이제는 단순 사회복지사가 아닌 주거에 접목시킨 '주거복지사'가 필요한 때가 왔다고 했다. "현재 한국주거학회와 주거복지사 자격증을 신설하려 준비 중이고 내년에 1회를 자격증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주거 질을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봉형 사장은 "소외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람들을 섞는 '소셜믹스'보다는 이들을 위한 교육과 마을에 애착을 갖도록 하는 공동체 활성화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주거안정은 이뤄졌지만 자립의 선결요건인 일자리와 소득창출로 이어지지 않아 자활의지가 부족하고 빈곤의 세습화 현상이 발생한다"며 "시장가의 30~70%의 임대료와 관리비 보조에도 강제퇴거나 주거불안에 노출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주거복지 위해서는 예산도 필요= 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영구임대주택은 모두 공단에서 관리하고 이들을 위한 복지도 제공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지원받는 자금은 한 푼도 없다. 재원은 시설보수 수주와 입주민들에게 받는 관리비가 전부다. 정부로부터 시설보수에 관한 비용은 일부 지원받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부터 공익근무요원들 62명이 배치받아 관리 일을 돕고 있는데 식비와 월급 등 총 1억5000만원에 달하는 금액도 공단이 자체 해결해야 한다.이 사장은 "주택관리업은 항상 적자에 시달린다"면서 "이제는 주택 공급이 어느 정도 이뤄졌고 노후한 주택이 많아졌기 때문에 새로 짓는 것보다는 기존 주택을 재보수해서 오래 가면서 더 좋은 주택을 만들도록 바꿔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목소리를 높이던 이 사장은 "입주민들이 가끔씩 잘 돌봐준 직원들을 칭찬하는 글을 손수 보내올 때 어려운 여건에서도 힘이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집무실에 놓아둔 사진 속 울릉도의 국민임대주택처럼 이제는 임대주택이 사회적 기피 대상이 아닌 국민들이 선호하는 주택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이 사장의 희망 섞인 말이 정착될 날이 머지 않아보였다.정리=박미주 기자 beyond@ 사진=최우창 기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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