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정부부처 수요일 저녁6시 퇴근 독려..일부 기업들 '패밀리데이', '자기계발의 날' 선보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그림의 떡이다. 오죽하면 한 대선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구호로 내걸어 호응을 얻었을까. 그러나 최근 들어 직장인들에게 '저녁'을 돌려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장시간의 노동시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업문화도 점차 바뀌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각 부처마다 앞장서 수요일 저녁 6시 퇴근을 독려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패밀리데이'나 '자기계발의 날'을 정해 한 달에 2~3일 만이라도 일찍 퇴근하는 날을 선보이고 있다.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을 할 수 있도록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강제 퇴근' 조치를 취하는 곳도 있다. 매달 첫째, 셋째 수요일. 오후 4시 종이 울리면 경기도 파주 출판문화단지 내에 위치한 웅진씽크빅 사옥에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란 노래와 동시에 직원들은 신나게 퇴근 준비를 한다. 다른 회사 같으면 한참 일할 시간인 오후 4시10분에는 퇴근버스도 마지막 운행에 나선다. 웅진씽크빅이 매달 두번씩 수요일 조기퇴근을 실시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4월 취임한 서영택 사장이 신나는 기분으로 일하자는 '신기(神氣)경영'을 도입, 그 일환으로 '3무(無)데이'를 선보였다. 이 날은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3종세트인 회의, 회식, 야근이 없다. 이영훈 교육마케팅팀 과장은 "7살 딸아이의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마중을 가서 아이와 함께 공원에서 평일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미래에셋생명은 지난 해 6월부터 '해피데이'를 시작했다. '해피데이'는 매월 둘째, 셋째 수요일에 6시 퇴근을 장려하는 제도다. 이날은 5시50분이 되면 전사에 퇴근을 유도하는 재밌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CEO부터 사원까지 모든 직원이 대상이다. CS추진팀 김호규 대리는 "제도 시행 후 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직원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며 "일과 시간을 업무에 집중해서 알차게 보내고 일과 이후 시간은 가정과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한화증권도 매월 첫째, 셋째 주 수요일을 오후 6시 정시 퇴근하는 '공동체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단순히 정시 퇴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문화 활동으로 가족과 팀원 간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족 공동체의 날'과 '팀 공동체의 날'로 나눠서 진행된다. 일과 삶의 조화는 물론 개인과 가족, 팀원과의 관계 향상을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CJ그룹도 매달 '패밀리데이'를 정해 오후 5시30분이면 퇴근을 장려한다. 아예 사무실 불이 꺼지기 때문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CJ CGV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달 둘째 주 수요일에 일찍 퇴근하고 있다"며 "이날에는 그동안 못했던 문화생활을 하거나 못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 초부터 매주 수요일을 '밥상머리 교육의 날'로 정해 가족들이 다같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6시 퇴근을 독려한다. 아예 6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근무시간을 30분 앞당기는 탄력근무제도 실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수요일 6시 퇴근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이날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는 직원들은 미리 차관의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칼퇴근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이 근처에서 회식을 하거나 사무실에 남아 업무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수요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교과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0%가 넘는 직원들이 수요일 저녁을 '자녀들과 보낸다'고 답했다.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주일에 하루라도 칼퇴근은 꿈도 못 꾸는 상태다. 대기업에 다니는 A과장은 "회사 차원에서 '패밀리데이'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이 몇 년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실시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하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이 많아 퇴근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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