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희주기자
사진. 채기원
편집. 장경진
신재평 “3집 이후 우리한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앨범의 첫 인상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봄을 맞아 간편한 차림이 되었을 때의 반가움 같은 것도 느껴졌다. 신재평: 우리는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4계절을 다 거치니까 특별히 계절감을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음악이 듣는 분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고유한 느낌이 있는 것 같더라. 가볍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계절로 치면 지금 같은. 무거운 옷도 좀 벗고 바깥에도 한 번 나가볼까 하는 기분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이장원: 편곡적으로 과거에 굉장히 많은 악기들을 집어넣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기타, 베이스, 건반이 주가 되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밴드 사운드를 목표로 삼았다. 악기 수가 줄어서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각각의 악기는 더 정교하고 복잡해졌다. 요즘은 기계음을 활용하는 2인조 밴드가 늘어났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밴드 사운드로 돌아갔다. 신재평: 대중예술이라도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흔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나쁜 게 없는 것 같다.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건데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좋은 방향의 생각이라고 믿는다. 이 ‘흔한’의 의미도 내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페퍼톤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는 우리의 방식이 독특했고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허밍 어반 스테레오나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운드에 쏠렸던 트렌드 덕도 봤고. 그런데 그 때 우리가 열심히 시도하고 연구했던 사운드들이 지금은 더 이상 최첨단이라고 얘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자각을 했다. 우리가 하나의 작은 비전을 제시한 것이었다면 그런 요소를 자연스럽게 자기 음악에 집어넣고 잘 하는 팀들이 많아진 걸 보면서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적으로도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들었을 때 느끼는 재미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만드는 본인들에게도 새로운 재미가 필요했을 것 같다.신재평: 매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앨범을 제작해왔는데 지난 3집이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다. 안테나뮤직으로 옮기면서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제약이 많이 없어졌다. 예를 들어 현을 쓰고 싶으면 준비만 하면 쓸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지. 그래서 당시 목표는 1, 2집 때 제약 때문에 충분히 완성하지 못 했던 팝 사운드를 제대로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열심히 했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쁜 음악’의 목표치에 거의 가깝게 만들었다. 그럼 더 팬시(fancy)한 걸 추구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비슷한 음반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이번엔 싹 달라지자,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하다가 기원으로 돌아가는 식의 발상을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록과 일렉트로닉에 한 발씩 담그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록으로 기운 것 같다. 예전에 비해 듀오라기보다 밴드의 느낌이 강해졌다. 신재평: 요즘 음악들이 미니멀해지고 있지 않나. 일렉트로닉에서 미니멀하다는 게 악기 구성이 단출해지고 각각의 소리들이 비중을 갖고 딱 딱 정리가 되는 것이라면 밴드 구성으로도 못 할 건 없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학창 시절에 밴드를 했고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밴드 키드였다. 너바나 음악 듣고 기타 리프 하나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남자애들이었니까 그걸로 돌아가는 건 억지를 안 부려도 되겠구나 싶었다. 치장된 옷을 벗고 진짜 알맹이를 쑤욱 찔러 보는 느낌도 있었다. 밴드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 후 '시부야케이'를 알게 되면서 막 예쁘게 화장을 했다면 이번에는 다 벗은 거지. 그게 삼십대가 된 우리의 코드와도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너무 꾸미면 부담스러운 나이인 것 같다. 원숙한 맛도 슬슬 나야 하고. 화장을 지운다는 의미에서 또 하나의 큰 도전이 보컬이다. 객원 보컬 비중을 줄였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려니 사실 좀 조마조마하더라. 라이브가 아니니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웃음) 그런데 생각보다 보컬이 괜찮았다. 신재평: 더 잘 하고 싶었는데 그 이상은 잘 안 되더라. (웃음) 그래도 이 정도면 납득되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도 하고 편곡으로 키도 조정하면서 열심히 했다. 녹음도 엔지니어가 신경을 많이 써주고 에디팅도 세심하게 하면서 굉장히 장시간동안 했다. <H3>“이번 앨범에는 우리가 온 길이 다 녹아 있다”</H3>이장원 “기본적으로 나는 현재 상황에서 기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신재평은 지난해 EBS 라디오 <아름다운 밤 우리들의 라디오>(이하 <아우라>)로 DJ 경험을 했다.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신재평: 그 시간은 그냥 즐거웠던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서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람이 좀 바뀌었다. (웃음)이장원: 재평이가 할까 말까 고민할 때 하라고 권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니까 그래도 사람을 좀 만나지만 얘는 처박혀 있었는데 나와서 돌아다니니까 보기 좋더라. 물론 너무 착해지는 것 같아서 좀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우리가 4집 때는 나름 록커 흉내를 내기로 약속했는데 얘가 ‘보이는 라디오’ 카메라 앞에서 막 착한 표정만 짓고. (웃음) 신재평: 일부러 착하게 보이려고 그런 거 아니야. 마음을 착하게 먹으면 착하게 생겨지는 거야. (웃음) 그런데 <아우라> 듣는 사람들 진짜 다 착했다. 나도 그 동네 살면서 너무 착해졌어. (웃음) 이장원도 게스트로 ‘심야의 행진곡-뮤직 프로파일링’을 함께 했지 않나? 사연을 듣고 청취자를 난도질할 때 예리함과 순발력에 놀랐다. 이장원: 내가 나쁜 말 할 때 재평이가 옆에서 되게 신나했다. (웃음) 사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거니까 안 좋게 말할수록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그래서 막 얘기하고 마지막에는 또 힘내라고 하는 패턴이었다. 재평이랑 같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둘이 십 년 넘게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 해왔는데 그걸 남들이 듣는다고 생각하니까 묘한 쾌감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대로 얘기하는데 이걸 누가 들을 수밖에 없다는! 이장원은 학업과 음악을 병행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장원: 진로는 민감한 문제다. 왜냐하면 지금 박사 과정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면에선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한편으론 멍청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데 기본적으로 나는 현재 상황에서 기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에서 페퍼톤스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게 늘 과제일 것 같다. 신재평: 요새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벌써 다음 앨범 생각도 슬슬 하는데 또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까 고민하게 된다. 아직 정리가 된 건 아닌데 이런 건 어떨까? 각 앨범의 컬러가 조금씩 더 뚜렷해지면 그것들이 쌓였을 때 듣는 분들이 그 날 자기한테 필요한 음악을 꺼내서 들을 수 있는 컬렉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티 없이 맑고 귀여운 음악을 듣고 싶으면 3집을 꺼내서 듣고 풋풋하고 패기 넘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1집, 잘 조립된 음악을 듣고 싶으면 2집을 듣는다던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컬러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다른 컬러를 기대할 수도 있을까?신재평: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게 세상을 보는 시선하고 어느 정도 일치하는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시니컬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갑자기 변신한답시고 되게 아픈 얘기 위주로 염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좀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계속 그런 역할을 하고 싶으니까. 물론 기대치를 충족시키는데 만족하면 제자리걸음밖에 안 되니까 새로운 걸 던져줘야 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30대가 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도 있지 않나? 이제 뒤돌아보거나 곁눈질하면서 걸어가기 힘들어진다는 두려움도 생길 것 같다.신재평: 3집 때 그걸 무진장 심하게 겪어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 때는 상황이 너무 확 확 변해서 ‘우리 지금 제대로 사는 거 맞나?’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둘이 만나면 음악 얘기만 하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같은 얘기는 잘 안 한다. 눈에 보이는 게 확실하고 그냥 그걸 하면 되겠구나 생각한다. 되게 단순해지고 약간 멍청해진 것 같기도 하다. ‘멋있으면 된다! 어떻게 하면 기타를 더 멋있게 칠까!’ 이런 고민만 하고 있지. (웃음)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간 것 같겠다. 이장원: 맞다. 회사 옮기고 나서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만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게 살 길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흉내를 내보려고도 했다. 생전 안 나가던 자리에 나가서 인사도 하고. 그러면서 무턱대고 음악을 만들어대던 시기에서 조금 멀어져버린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4집은 멍청해지자는 암묵적인 모토가 있었던 것 같다. 이거 멋있냐, 저거 멋있냐만 생각했지 이거 하면 사람들이 여기, 2분 30초 시점에서 막 반응하겠지 같은 건 생각 안 했다. (웃음) 우리가 상업음악을 만드는 대중음악가로서 뭔가 전략을 짜서 하는 데 소질이 좀 부족하더라. 그런데서 오는 좌절감이나 고민을 겪은 뒤라 이번 앨범은 그냥 음악에만 집중한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마음을 다시 갖기 위해서 멍청이 여행도 다녀 온 거다. 대작을 만들러 갔다가 맥주만 대작하고 온. 신재평: 와, 그 말 재밌다, 우하하하. 살다 보면 뭔가에 영향을 받는 타이밍이 생기지 않나? 그런데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있는 동안은 약간 판단이 흐려지는 것 같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정돈을 못 하거나 겁이 나서 눈앞에 있는 걸 제대로 못 보기도 하고. 그래서 3집 때보다 지금 우리가 더 똑똑하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스물아홉, 서른에 그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한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가 이번 앨범에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