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기자
독서당 건립 위치도
독서당은 세종 8년(1426) 집현전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세종의 명을 받아 국가 주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젊고 유능한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하게 한 데에서 비롯됐다. 일명 호당(湖堂)이라 한다. 사가독서는 세조 때 집현전의 폐지로 없어졌다가 성종 때 홍문관 설치와 더불어 ‘남호 독서당’으로 복구됐다. 이후 중종 12년(1517년)에는 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강 연안의 두모포(豆毛浦)에 독서당을 신축하고 ‘東湖 讀書堂’이라 했다. 동호(東湖)란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어귀 한강을 말한다. 동호독서당(東湖 讀書堂)은 이후 70 여 년간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양성기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조광조 주세붕 이황 이이 정철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등이 모두 여기를 거쳐 갔으며 조선왕조 때 명성을 날린 문신들 중 독서당에 뽑혀 수학 연마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독서당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됐고 제도는 정조 때 규장각 설치로 소멸됐다.최근 최초의 호당 출신 권채(세종 1426년)의 후손인 안동권씨 추밀공파 호당공종회 80여명이 성동구에 독서당을 조기 복원해 줄 것을 청원한 바 있다.고재득 구청장은 "옛 국왕들이 독서에 힘쓰게 한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서당 복원사업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박종일 기자 drea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