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유럽연합 정상회담은 이틀간의 회담 끝에 가맹 27개국 가운데 적어도 23개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재정협약(fiscal pact)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약이 대변하는 유럽 각국의 '정치적 의지'는 유로화 존속과 유럽의 통합이며 '재정 연방주의'(Fiscal Federalism)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이루어졌고, 무엇이 남았는지 문답 형식으로 알아본다. ▲ 신재정협약, 누가 참여하나?- 유로존 17개국 전체와 덴마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그리고 불가리아까지 현재로서는 23개국이 이 협약에 참여한다. 위의 6개 국가는 궁극적으로는 유로화를 자국 통화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협약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 ▲ 누가 빠지나? - 영국과 헝가리는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 반면 스웨덴과 체코는 의회에서 더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아직 여지를 남겨두었다. 또 헝가리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을 협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반대하고 있지만, 추후에는 참여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유럽연합 27개 국가 가운데 영국을 제외한 26개국이 모두 이 협약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왜 유럽에 새로운 조약이 필요한가? - 지난 2년 동안 유로화 붕괴 위기에 시달려온 독일과 프랑스는 조약에 명기된 강력한 재정 규제만이 금융시장에 국채 상환을 확신시켜 줄 수 있을 것이며, 다시는 이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 새 재정협약은 어떻게 진행되나? - 이번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바로는, 이 협약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각기 자국내 헌법에 '부채 방지 조항'(debt brake)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 부채방지 조항은 각국이 국내총생산의 0.5% 이하로 재정 적자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외적인 상황이거나 불황 때만이 이 적자폭 상한선을 넘기는 것이 허용된다. 협정 참여국가가 부채방지 조항을 위반할 시에는 유럽사법재판소가 개입한다. 또 참여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얼마만큼의 국채를 발행할 것인지 사전에 통보해야 한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안정기구(European Stability Mechanism)는 어떻게 되나?- EFSF는 처음부터 2012년 말까지만 운용키로 한 한시적인 기구로 출발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ESM은 영구적인 구제금융 기구이다. 유럽의 자체적인 IMF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합의에 따르면 EFSF는 2013년 말까지 운용되고, ESM은 당초 계획보다 1년 빠른 2012년 7월부터 가동된다. 즉, 적어도 1년6개월 동안은 두 기구가 동시에 운용될 예정이다. 또 법적인 성격도 EFSF는 각국 정부가 출연한 자금으로 운용되기는 하지만 '민간회사'(private company)였던데 반해, ESM은 정부가 책임을 지며 유럽중앙은행(ECB)이 관리를 맡는 준정부기관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시장의 신뢰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유럽 국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 ESM의 운용 방식은 비상시에 주주들의 85%의 찬성으로 각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만장일치제였던 EFSF와는 달리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이다. - ESM 운용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EFSF와는 달리, 은행 등의 민간부문의 손실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7월 EFSF 설립 뒤 그리스 국채에 대한 원금탕감(haircut)을 결정하면서 민간참여(PSI)를 강제한 것이 유로화 위기를 부추겼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다. 이번에는 이런 요소를 없애 민간 자본이 유럽 국가 국채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즉 은행은 국채에 투자해도 원금은 잃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했다. ▲ 이번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어떤 것들인가? - 유로존 부채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방화벽이 필요한지 그 규모를 결정하지 못했다. 현재 ESM의 규모는 5000억 유로로 한정되어 있지만, 시장에서는 최소 1.5조-2조 유로가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ECB의 은행채 매입 등 새로운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 액수는 가변적이다. 유럽 각국은 오는 3월 다시 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이다. 독일이 반대하고 있는 ESM의 은행화 방안이 실현되면, ESM이 지원할 수 있는 자금 규모는 그 몇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 이번 협약에 참여한 국가들은 ECB가 부실 남유럽 국가의 국채 매입을 확대할 수 있는지 명확한 시그널을 주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금융시장에서 가장 원하는 사항이었지만, ECB도 유럽연합 정상회담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는 '원칙'의 차이라기 보다는 '전략적 유보'라고 보아야 한다. 만일 ECB의 국채 매입 사인이 내려진다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국가가 굳이 주권 침해의 우려와 국내적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협약에 참여할 유인이 줄어든다. 이른바 '코를 꿰기'(co-opt)위한 협상 카드로 보는 것이 맞다. - 이번 협약은 유럽조약(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국가들 사이에 '정부간 협약'(intragovernmental pact)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유럽 집행위원회 등 유럽 차원의 행정기구와 사법재판소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즉 법적, 제도적인 장벽은 많이 남아있다. ▲ 이번 협약이 제대로 통할까? 부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다. 시장의 관심은 정상회담 자체가 아니라, 이번 회담이 ECB가 국채 매입을 할 명분을 얼마나 주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3/4의 성공이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유로화 구제에 동의한 셈이고 이는 '하나의 유럽, 하나의 통화'라는 결속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정치적 결의가 조약 수정이라는 법제화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아직도 각국이 국내에서의 추인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점에서는 유보적이다. 그러나 위기 때에는 몸집을 불리고, 돈을 찍어내야 한다는 원칙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는 '실패'라고 주장한 반면에 유럽과 미국의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국채는 모두 가격이 하락했다. 달러화 등 주요국 통화를 상대로 한 유로화 환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지난 몇차례의 유럽연합 정상회담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는 경험 때문에 시장은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유로화 붕괴' 공포는 상당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디폴트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 교훈은 무엇인가? - 빚이 많으면 주권을 포기하면 된다.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쓰는 것과 유사하다. 이공순 기자 cpe10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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