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STX의 새로운 10년 불 지르러 내가 왔다

신철식 STX미래연구원장지난10년의 성공 잊어라조선 사업 코드 안 바뀌면 더 이상 미래는 오지 않아30년 경제정책 관료 경험 그룹 인하우스 싱크탱크로

신철식 STX부회장(STX미래연구원장), 사진= 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조슬기나 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말 찾아간 서울 남대문로 5가 씨티타워 16층 STX미래연구원. 개원 한 달이 넘었지만 빈 공간이 더 많아 썰렁해 보이기까지 했다.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신철식 부회장 집무실 서재에도 몇 권의 책만 꽂혀 있었다. 조직이 갖춰지지 않아 옆 건물 STX남산타워에서 이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텅 빈 연구원과 서재에 STX의 어떤 미래가 채워질지가 더 궁금해졌다.신 부회장과 악수를 나눴다. '카리스마'가 엿보인다는 인사말에 "그런 얘기 자주 듣는다"며 가볍게 넘어간다. 이어진 1시간 반 가량의 대담시간 동안 다양한 견해를 건넸다.◆"공부 많이 하고 있다"= 1954년생인 신 부회장은 네 살 터울인 강덕수 STX그룹 회장(1950년생)과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며 얼굴을 터온 사이다. "서로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다"는 그는 "아버지(고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쌍용양회 사장을 역임했다. (강 회장이) 쭉 쌍용에 있었고, 재무파트를 담당하면서 자연히 경제부처 출입도 잦았다"고 설명했다.관료 생활을 하면서 강 회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은 없었단다. 지난 2008년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공직에서 나온 후 설립한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중 그룹의 미래를 그려달라는 강 회장의 제안으로 지난해 3월 STX에 입사했다."평생 관료로 지내면서 정책 부문에서만 일해 비즈니스는 잘 몰랐다. 큰 그림을 보려고 하니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신 부회장은 "민간기업으로 오면서 느끼는 저항은 없었다. 거대 조직생활은 기본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전에 몸담았던 경제기획원도 변화가 많았지 않았느냐"며 기업인으로 변신한 소감을 전했다.◆'CEO 개척정신'은 큰 자산= STX는 올해로 창업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간 STX는 무려 100배나 사세를 키웠다. 고속성장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신 부회장은 "1년 넘게 봤더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3박자가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먼저 '수직 계열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다. 쌍용중공업 시절 선박용엔진 등으로 지난 1998년 연매출 규모가 2600억원이었던 회사는 STX그룹으로 출범한 뒤 상하전후방 수직계열화 전략을 펼친 결과 지난해 기준 28조원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둘째,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국내에는 흑자도산 기업이 많았다. 가능성 있는 많은 회사들이 자금난으로 쓰러졌는데 STX는 엔진 수요업체인 조선사(대동조선, 현 STX조선해양)와 조선사에 배를 발주하는 해운사(범양상선, 현 STX팬오션)를 인수했다. 돈 때문에 쓰러진 회사에 자금이 들어가니 단기간에 회사가 정상화 돼 엄청난 매출과 시너지를 올렸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꼽았다. 신 부회장은 "21세기 들어 재벌 1세가 사라지고 2~3세 경영인 체제로 전환되면서 '헝그리 정신'은 사라지고 비즈니스를 편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방향으로만 가는데 개척정신이 필요하다"며 "강 회장은 창업주로서 도전의식이 굉장히 강하다"고 설명했다.강 회장의 비즈니스 감각도 높이 평가했다. 최근 따낸 러시아 신조 조선소 건설 계약과 관련해 신 부회장은 "1980년대까지 양극체제의 한축이었던 러시아(구 소련)에 조선소를 수출한다고 생각해보라"며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는 세계 1위가 아닌데 조선업은 10년전부터 우리가 세계 톱이고, 1~4위 조선소가 다 한국업체다.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21세기 들어 제조업에서 성공한 유일한 오너인 강 회장은 '대운(大運)'을 타고 났다고 평가했다.

신철식 STX 부회장(STX미래연구원장) 사진= 윤동주 기자 doso7@

◆"불 지르는 게 제 할일"= STX는 이제 새로운 10년을 향한 출발점에 섰다. 그룹의 발전 전략인 '비전 2030'을 만든 신 부회장은 STX의 미래도 밝다고 단언했다.단, 그는 "앞으로는 지난 10년간 했던 데로 하면 안된다. 코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10개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 비즈니스로는 안되겠다라는 필요성을 확산시키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고 말해 변화가 수반된 미래가 돼야 함을 강조했다.지난 10년간 STX는 채움의 과정이었다. 신 부회장은 앞으로의 10년은 '버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 끌어안고 어떻게 가겠느냐. 과감한 변신이 있어야 한다"며 "이상한 놈이 나타나 불을 질러야 하는데, STX그룹에서는 제가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망하려면 빨리 망하는 게 좋다. 그래야 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직에서 성장한 주역들은 공명심과 인정에 얽매어 제 살을 도려내기 힘들기 때문에 굴러들어온 돌인 자신이 성장을 위한 아픔을 감내하겠다는 뜻이다.따라서 연구원은 이러한 신 부회장의 의지를 실천하는 '체인지 에이전트' 조직으로 운용될 전망이다.◆"유연성ㆍ순발력 갖춘 조직"= 연구원은 25명에서 출발했다. 신 부회장은 "적정 규모는 50명선이지만 니즈에 따라 충원할 것이라 인원수는 의미가 없다"며 "계약직제를 활용해 업무 프로젝트에 따라 (인원을)가변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직원을 채용할 생각은 전혀 없단다. 조선산업에서는 한국이 최고라 외국에 도움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다른 그룹과 차별화되는 '인하우스 씽크탱크'라는 컨셉을 추구한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그는 "지난해 국내 30대 재벌이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인 맥킨지, AT커니 등의 컨설팅사에 지불한 컨설팅비는 몇백억원에 달한다"면서도 "컨설팅 업체가 외부에 있으면 기업이 극비사항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 평가밖에 안된다. 반면 삼성 등 대기업들이 컨설팅사의 인재를 영입해 활용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제조업 조직에 적용을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신 부회장이 구상한 연구원은 그룹 울타리에 속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체제다. 여기에 조직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결합시키면 사내 정보를 모두 공유하면서 효율적인 방향으로 조직을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이다.최근 재계에 몰아치고 있는 감사기능을 연구원도 맡게 될까? 신 부회장은 "독립된 입장에서 계열사간 충돌하는 부분이나 엮여 있는 부분 등을 해결해주면 구태여 이 부문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수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여태까지 못했어?", "왜 못한거야?"라는 분석이 저절로 되기 때문에 좋은 형태의 기능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신 부회장은 "벌써 각 계열사들이 (연구원에) 검토해 달라고 내용을 속속 보내온다. 회장님도 답답한 점을 보내온다. 정기 보고는 의미 없고 이슈별로 수시로 보고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끝으로 삶에 있어 추구하는 테마에 대해 물어보자 신 부회장은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한국의 경쟁력은 이미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준을 넘어섰다"며 "그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에선 승리할 수 없다. 21세기에는 잘하는, 정말 잘하는 게 중요하며 지도층들이 빨리 인지하고 전파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신철식 STX 부회장 주요약력>▲1954년 경북 칠곡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행시 22기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과ㆍ자금계획과ㆍ물가정책국 유통소비과ㆍ물가총괄과 ▲행정조정실 제2행정조정관실 ▲산업 4과장ㆍ예산실 기금관리과장 ▲재정경제원 예산실 투자기관관리과장 ▲예산청 사회예산국 교육정보예산과장ㆍ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 ▲예산실 사회예산심의관 ▲재정기획실 산업재정심의관 ▲기금정책국장 ▲예산처 정책홍보관리실장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재단법인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영진전문대학 석좌교수 ▲STX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 ▲STX미래연구원 원장대담= 김영무 산업부 부국장정리= 채명석ㆍ조슬기나 기자 oricms@ & seul@사진= 윤동주 기자 doso7@<ⓒ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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