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여전히 내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요” -2
<div class="blockquote">이선희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많은 질문들을 생각했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나 요즘 가수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 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연을 원하는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에 대한 질문들. 하지만, 그런 질문과 의도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4년 MBC <강변 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타는 순간부터 가수였던 이선희는, 지금도 여전히 자기 자신의 노래와 생에 집중해야 하는 ‘가수’였다.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어 지금도 후배에게 들을만한 음악을 부탁하고, 그 음악들이 너무 좋아서 기쁘고, 그 음악을 자신이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한다. 데뷔 27년의 가수도 어느 한 순간도 음악에 대해 마음 놓지 못한 채, 때로는 며칠씩 불면에 시달리며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노래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수에 대해, 노래에 대해 한참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네티즌의 언어도, 평론가의 언어도 아닌 가수의 언어로 그의 노래에 대해 들었다.
그런 태도 때문인지 지난 앨범은 특히 어떤 노래든 한발 더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요. 이선희: 노래를 할 때 부르는 사람은 나지만 그 곡을 만든 사람의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래할 때 작곡가와 작사가가 원하는 대로 귀와 마음을 열어요. 그 분들이 나한테 주려고 하는 것들을 다 받아먹어요. 그 곡을 쓸 때 그 사람들이 취했고, 느꼈던 것들을 나는 모르니까 그걸 충분히 받아서 녹음해요. 그래야 그들이 주는 느낌, 연주자들이 주는 느낌이 들어올 수 있는 여자기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녹음실에서는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않고 완전히 다 담그지도 않고 그렇게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앨범을 듣는 분들이 자기의 느낌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내가 다 울어버리면 임팩트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것이 담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H3>“요즘은 라디의 음악에 약간 취해있어요”</H3>
굳이 말하자면 한 발 덜 가느냐, 더 가느냐의 문제일 수 있는데 그건 지난 30여년 동안 쌓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잖아요. 이선희: 맞아요. 지금 후배들이 만약에 내가 하는 걸 다 알고 있다면 좀 징그럽지 않을까요? (웃음) 그들은 풋풋해야 하고, 아직 더 도전에 가치를 둘 줄 알아야 되고, 가끔 뽐내도 괜찮아요. 그럴 때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라디(Ra.D)라는 친구 음악에 약간 취해있어요. 그리고 아직 앨범을 내진 않았는데 함춘호 선생님의 아들이 힙합을 해요. 그 친구 음악을 들었는데, “아, 얘네들은 어떻게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그런 걸 느꼈어요. 나는 맑아도 슬픔이 있는데, 얘네들은 정말 맑아요. 그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라 너무 부러워요. 나는 사실 고민하거나 어떤 질문이 던져져도 나를 불사르지는 못해요. 뭐랄까, 비겁해요. 비겁이라는 단어가 적당한지 모르지만 나를 다 태워서 거기에 뛰어들진 못해요. 그냥 상상할 뿐이죠. 그런데 어떤 젊은 친구의 음악은 얘는 정말 그렇게 빠졌겠구나 싶은 것도 있어요. 그 도전이 너무 부러워요. 내가 깨진다 해도 정말 자신을 태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그런데 난 그걸 평생 갖지 못하겠죠. 그래서 난 따라갈 수 없는 한계가 보이니까 그럴 때는 어떡하겠어요. 그냥 걔네들 걸 받아 들여야죠. (웃음) 그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노래에 대한 느낌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같은 노래를 불러도 다른 감정일 거 같구요. 이선희: 진짜로 그래요. 다르게 부르게 돼요. 내 목소리는, 변할 수 없으니까 그 목소리는 그대로겠지만 더 슬프고, 아니면 더 청아할 수도 있고. 공연에서도 관객이 주는 느낌이나 연주자가 주는 느낌 때문에 달라지기도 하고. 예를 들어 ‘알고 싶어요’라는 곡을 부를 때 지금은 전보다 무덤덤해졌잖아요. 삶이 주는 무덤덤이 있기도 하고. 설레지만 예전의 설렘이 아니에요. 이미 알 건 다 아는 설렘이고. (웃음) 공연을 할 때도 하루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관객을 봤는데 그 분들의 얼굴에서 “아 나도 그런 사랑을 했는데” 같은 감정이 느껴져서 그런 느낌으로 부르고, 하루는 첼로 연주가 너무 슬프게 느껴졌어요. 이미 사랑은 다 끝났고, 다시는 안 잡힐 사람에 대한 느낌을 따라 불렀어요. 그런데 지금은 직접 앨범의 모든 곡을 쓰잖아요.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을 노래할 때는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이선희: 어렵더라고요. (웃음) 예를 들어 드라마 <대물> OST를 부를 때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한두 번 듣고 안 들었어요. 너무 많이 들으면 그 노래가 내 생각으로 변해버리고, 내 것이 이입돼 버리니까. 그래서 그만큼만 듣고 그 날 녹음실에서 그 분의 생각을 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그 분이 요구하는 것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네 번 정도를 불렀는데 자기가 요구하는 것들이 다 됐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러시라고 했는데 지금 들으면, 헉! 하고 놀라요. (웃음) 왜죠?이선희: 난 그렇게 울고 싶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감정에 치달았다가 다시 잡았다가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 노래는 약간 내가 발가벗겨진 느낌도 들어요. 내가 내 것을 표현할 때는 절제돼 있는 나를 하나씩 끄집어내는 거고, 남이 나를 봤을 때는 그 사람이 상상한 나니까 실제보다 극단적으로 표현돼요. 그래서 내가 벗겨진 것 같은 순간이 쉽게 와요. 꼭 내가 할 수 없는 음인데도 내야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왜냐하면 그 곡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 해야 되니까. 하지만 내가 쓰는 곡들은 평상시 나에요. 늘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뽑아내는 거고, 그게 지루하지 않게만 가야된다는 거죠. 그렇게 표현하고 난 다음에 다 쏟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또 생겨야 되고, 또 채워져야 되고. <H3>“나를 좋아했던 분들을 위한 걸 다시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H3>
최근 앨범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정적으로는 덤덤한 듯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욕심이 많은. 안 그러면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요즘 음악들을 많이 들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선희: 요즘 라디에게 랩 음악을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CD 두 장에 힙합 음악을 추천해줬어요. 그걸 계속 듣고 있어요. 일부러 듣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아 그래? 그런 것들이 있나 하고 들어요. 하지만 좋아요. 그게 진짜 좋고, 그 리듬이 나를 때리고 내가 거기에 취할 수 있고, 그래서 들어요. 요즘에는 연주 위주의 음악들이 좋구요. 보컬이 빠진 음악들을 들으면서 아, 이렇게 연주가 있었구나, 내 보컬이 여기에 이렇게 얹어지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좋아해서 충분히 내가 느끼고, 어느 순간 그걸 넘어선 게 생기면 그게 음반에 나오는 거예요. 들었던 음악이 자신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으로 나오는 건가요. 이선희: 얘기를 하다보니까 득도한 사람 같은데 (웃음) 그렇진 않아요. 다 알고 있다면 항상 대중한테 사랑 받겠죠.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 대해 무언가 찾고 싶고, 알고 싶어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 어떨 때는 그 안에서 또 노래가 되지 않아서, 내 마음은 이런데 마음처럼 다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는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하죠. 그러면서 굉장히 내 자신을 볶아 쳐요. (웃음) 너는 지금 몇 년 동안 노래를 했는데 아직 그걸 모르니? 그러고. 그런 것들을 앨범에 담아요. 계속 자극받고, 욕심내는 과정이네요. 이선희: 그래서 실패를 볼 때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전에 국악에 심취해서 김영동 씨랑 앨범 전체를 국악으로 해본 적이 있어요. 인기와 상관없이 한번 미친 짓 해보자는 느낌으로. 그렇다고 원래의 국악을 그대로 한 건 아니었고, 대중음악과 접목을 시켰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앨범 한 장을 록으로 다 해보기도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열정이 있으니까 이걸 지금 빨리 쏟아내지 않으면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평가는 아주 차가웠죠. (웃음) 그런데 그렇게 쏟아내고 나니까 조금씩 서정적인 감정의 내가 보였구요. 그래서 그 후에 국악과 대중적인 멜로디나 감성의 접목이 이뤄졌던 거 같아요. ‘인연’이나 ‘그대 향기’는 단지 국악을 해서 눈에 띄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중적인 곡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선희: 내가 대중적인 사람이라. (웃음) 늘 숙제처럼 남아있는 부분이에요. 김영동 씨랑 한 곡들을 가끔 외국에서 공연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아, 내가 이걸 계속해서 놓치지는 말아야할 텐데”하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어떻게 녹아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계속 가져가고 싶은데, 그대로 가져간다고만 하면 그걸 좋게 평가하진 않을 거예요. 대중의 마음은 늘 움직이는 거고, 변하지 않는 건 가차 없이 또 싸늘하게 평가하니까. 늘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시는 게 곧 음악 작업일 수도 있겠네요. 이선희: 지금도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평상시에 흥얼거리거나 다른 이의 음악에서 굉장히 충격을 받기도 하고,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못하는 거지?”하고 좌절도 해요. 그런 일들을 아직도 겪으면서 내가 그렇게 움직일 마음이 있다는 게 고마워요. 누군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에 스스로 고민하고 있다는 내 자신이 너무 좋고. 앨범 낼 때도 마찬가지에요. 처음에는 노래가 좋아서 했어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그냥 이거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처음엔 하드록을 했었으니까 아직도 그 정신이 남아서 (웃음) 발라드를 불렀지만 곳곳에 그런 느낌에 베어 있기도 해요. 라이브를 할 때는 앨범보다 더 격렬하게 하기도 하고. 그런데 앨범은 작곡자가 있어서 그 사람의 의도에 충실하려고 해요. 그 분들 생각과 그 분들이 곡을 만든 의도. 그러니까 내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그 사람 걸 백퍼센트 받아들이는 게 더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라이브를 할 때는 이건 내 것이 되잖아요. 그때는 정말 하드하게 불러요. 그때는 그렇게 느끼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표현된 거구요. 자작곡이 앨범에 실리면서 그 두 가지 사이가 좁혀졌나요? 이선희: 사실 나는 첫 번째 앨범부터 늘 곡을 썼었어요. 그런데 그 때는 자기 곡을 쓰면 작곡가분들이 곡을 잘 안 줘요. (웃음)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이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 않을 때였고, 여자가 곡을 쓴다고 하면 평가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을 때여서 “저도 곡을 썼는데 넣고 싶은데요”라고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해요. 그러면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귀가 얇은 사람이라 써놓고 그냥 “에이”하고 치우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쓴 곡을 매니저에게 들려줬는데 “언니다운 일치감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라일락이 질 때’였어요. 그 때부터 내가 쓴 곡을 해도 되겠구나 싶었고, 조금씩 비중을 늘렸어요. 그러다 ‘인연’을 발표했는데 그 앨범이 상상외로 잘 됐었고. 그런데 창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거나, 표현하고 싶은 게 많잖아요. 그래서 너무 자기 입장만 내세울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반짝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자신에 대한 표현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 사이의 접점을 찾나요? 이선희: 그건,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갖지 않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어떨 때는 막 욕심이 생기고, 어떨 때는 좌절을 느끼고. 그래서 괴로워요. 난 왜 저걸 갖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웃음) 나를 이렇게 취하게 하는 것들처럼 나도 누군가를 취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런 고민들이 너무 많고, 지금도 공연 끝나고 한 열흘을 계속 못자고 있어요. 너무 생각들이 많아요. 이걸 하고 싶고 저걸 하고 싶고,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잠을 잘 수 없어요. 어떨 때는 그런 욕심들이 생기는 게 두려워요. 다 하지도 못할 거면서, 늘 생각은 많고. 그게 나에요. 이렇게 충돌하고, 내가 부족한 걸 아니까, 내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아니까, 귀를 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지금 하고 싶으신 게 뭔가요? 이선희: 내 음악적인 동지는 나와 가장 많이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매니저에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참 많이 해요. “어떻게 앨범을 가야 될까?” 그런데 전에는 매니저가 자기 생각을 많이 말했는데, 이젠 나보고 생각하래요. (웃음) “언니가 생각해서 얘기하면, 그렇게 그냥 하게 할게” 그래요. 그래서 숙제가 더 커지니까 어려워요. 그런데 그냥, 조금 더 진정성을 가졌으면 싶다는 생각을 해요. 가사도, 멜로디도. 지금 내가 좋아하고 느꼈던 것들을 담아내는 역할을 뒤로 하고, 그냥 내가 전에 했고 표현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는 시기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나도 그걸 원하지만, 대중가수니까 40대, 50대, 60대 분들을 위해서, 그분들을 위해서 누군가는 다시 그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나여야 되는 것 같고. 나는 이미 새로운 것도 받아들였고 그게 좋다는 것도 알고, 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조금 자제하고 이번에는 나를 좋아했던 분들을 위한 걸 다시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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