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사교육과의 전쟁’

올 여름은 유난히 더위가 일찍 찾아 왔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더위는 큰 장애물입니다. 곧 여름방학이 오겠지만 몇 달 남지 않은 입시 준비로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여름방학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내느냐가 입시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 수업이 줄어든 만큼 학원 등 사교육으로 학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계속됩니다. 학원들은 방학을 앞두고 대대적인 홍보로 학생들을 유인합니다. 심지어 단기 기숙학원까지도 활개를 칩니다. 사교육이 절정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중학교 입학부터 시험을 치렀던, 지금은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어서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에게도 입시 지옥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학원이 없다 보니 방학 중에도 학교에서 특별 수업을 하며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당시 6학년을 담임한 선생님들은 여름방학은 반납하고 학생들과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한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방학 중 특별수업 때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시험을 보고 곧바로 채점을 해 바로 벌이 가해집니다. 성적이 어느 선을 넘었거나 부족하지만 향상된 학생들은 귀가를 하고 소위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보충수업을 하며 체벌까지 가해집니다. 매일 그와 같은 생활은 방학이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당시에도 일부 비밀과외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 세대들은 중학교 입시, 고입, 대입을 거쳐 지금 사회의 중추로, 이른 사람들은 벌써 중심에서 조금씩 비켜서는 처지가 되어 있습니다. 당시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리도 곳곳에서 나왔고 가난한 집 아이들의 ‘면학 만세’가 심심치 않게 신문을 장식했습니다. 세차장 집 아들이, 세탁소 집 딸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이 곧잘 우리를 흥분하게 했습니다. 그 후 중학교 입시가 없어지고 무시험으로 진학하면서 소위 일류 고교를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중학교 평준화로 인해 중학교에서의 수업이 일찍 끝나고 하교 이후 시간이 많아지면서 학원이 늘어나고 대학생 형님들의 과외 심지어는 그룹을 지어 학교 선생님들에게 과외를 받는 사교육의 시장이 팽배해집니다. 고교까지 추첨에 의한 무시험 전형이 확대되자 이젠 단 한 번의 승부로 인생을 저울질하는 지옥 같은 ‘대입 전쟁’이 학생들을 기다립니다. 일부 고교에서는 우열반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모색하지만 이미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에 실질적인 자리를 내어 줍니다. 1980년 이후 군부가 권력을 잡자 국보위에서는 당시 ‘망국병’이라 일컬어지던 과외를 교육 현장에서 추방하기 위한 ‘7?30 교육개혁’을 발표합니다. 강제성 있는 여러 조치들로 말도 많았지만 핵심은 과외를 영구히 추방하고 잃었던 교단의 신뢰를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군부 정권답게 과외 단속을 강제하면서 망국병은 치유되는 듯 했으나 얼마가지 못해 더 극성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소위 강남이란 교육특구가 형성되고 너도 나도 강남으로 몰리다 보니 집값이 치솟고 ‘현대판 맹모삼천지교’가 강남에서 꽃을 피웁니다. 지금도 사교육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려면 사교육비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자 청와대 관계자와 집권 여당 당직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나서 방법론을 싸고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1라운드, 2라운드 매번 의견을 달리하며 충돌하다 보니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비중을 축소하고 대입에 고교 1학년 내신 반영을 배제하며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밤 10시 이후 학원 수강을 금지하는 등 여러 방안이 나왔으나 교과부가 발표한 것은 수능과 학교 교과 과목을 축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능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에서 시험과목을 줄이고 교과군도 2011년부터 10개에서 7개로 축소해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줄여 사교육의 감소를 유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공부할 과목이 준다고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란 인식은 너무 단순한 계산이라고 지적을 합니다. 사교육의 핵심은 영어, 수학, 국어 과목인데 그 밖의 과목을 줄인다 해도 사교육 경감엔 별반 효과가 없고 오히려 학교교육의 왜곡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육 현장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정부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을 받은 초·중·고 학생은 전체 학생의 75.1%에 달하고 지출한 사교육비가 약 21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를 1인당 경비로 환산하면 매월 30만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지출한 셈이니 학생이 두 명인 가정은 한해 사교육비 지출이 700만원에 이릅니다. 이와 같은 사교육의 팽배는 서민 가계에도 큰 부담이 되지만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다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많은 나라들은 그 해결책을 공교육 혁신에서 찾습니다. 공교육이 살아나 제 기능을 다해야 사교육이 퇴조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교사들의 경쟁력 확보가 있습니다. 실력과 열정이 있는 교사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그렇지 못한 교사들은 능력을 배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영국은 교사자격증 갱신제를 도입해 5년 주기로 자격을 검증하고 일본도 교원평가제를 도입했습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고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교육행정을 보며 오래 전 냉방시설도 없는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중학교 입시를 준비했던 여름방학을 떠올려 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을 치르는 우리의 자녀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옛 선생님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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