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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수정 2021.05.04 10:37입력 2021.04.03 11:00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인터뷰_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황재호 한국외대 교수와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3.'진보현실주의자'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대담/황재호 한국외대 교수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관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대학의 교수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교육, 둘은 연구, 셋은 정책이다. 하나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이 세 가지에 모두에 해당된다. 정평이 난 탁월한 강의, 약 400편에 이르는 국내외 연구논문들과 저서들, 노무현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에서부터 현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까지 역임했다.


국내 학자로서는 또 유일하게 역대 모든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다. 그는 항상 우리 외교안보정책 담론의 중심에 서 왔는데, 그만큼 논쟁성과 함께 정책적 영향력 때문이다.

그는 최근 신간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를 발간하며, 책명 그대로 다시 한번 한국외교의 미래 시나리오들을 도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얼마 전 미중 고위급 외교회담이 알래스카에서 열렸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두 강대국 외교사령탑의 첫 만남에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미국이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 일본하고만 2+2 회담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는데 다행히 중국과도 절묘한 지역인 알래스카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했고, 미국은 토니 블링컨 미국무부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하면서 양국의 외교 실세들이 모인 2+2 회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했지만 회담은 가치와 지정학적 문제에서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블링컨과 설리번의 경우 미국 국내 여론을 염두에 두고 강경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며, 양제츠 역시도 중국의 국내 반응을 고려하여 발언 강도를 높인 것으로 압니다.


다만 비공식 회의에서는 코로나 19, 기후변화, 경제 현안, 사이버 안보, 중국해경법, 미얀마, 한반도 문제 등 여러 주제에 걸쳐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고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번 회담과 관련해 대결 부분만 강조된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협력과 경쟁 부분을 고려해야 하며, 양국 간 대화의 장이 열려있기 때문에 미·중 관계를 절망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바이든의 외교팀이 첫 순방지로 아시아를 방문한 것에서 미루어 볼때 미국 대외정책의 주축이 이제 유럽, 중동이 아닌 아시아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인터뷰_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황재호 한국외대 교수와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기본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을 통해 아태지역에서의 재균형을 모색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지나치게 중동지역에 집중하고 얽매여있었기 때문에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허용했다는 인식에서지요.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인태 전략에 역점을 두었지요.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방향성도 이러한 정책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시점에 미국으로서는 아시아 지역에 역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미국 내부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큰 위협으로 보는 데는 이전 독일, 소련 등 국가들과는 달리 첫 비(非)서방권 도전 국가란 시각이 크게 자리한 듯합니다. 최근 미국 내 아시아인 공격에서 황화론과 문명 충돌의 개연성은 여전히 있다고 할까요?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19세기 말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에서 황화론이 제기되었지요. 그 이후 청나라가 쇠망하면서 사라졌다가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되자 황화론이 부활한 바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이 미국경제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때리기’가 등장했고 현재는 ‘중국 때리기’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과거부터 서구열강들은 아시아 도전국들을 견제를 해왔습니다.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21세기를 이념의 대결이 아닌 문명과 문화 정체성의 충돌로 바라봤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그런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호주 등에서 아시아 증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또한 이들 국가에서는 중국위협론의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을 악마화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이지요. ‘중국 때리기’가 국내정치적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정치 엘리트, 지식인, 여론지도층이 이를 차단하기보다는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하면 앞으로 문명의 충돌 가능성이 커질 것입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국내에서는 미중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냉전이라는 용어는 과거 냉전이 이념대결이었듯이 21세기에도 미·중 간에 이념적 대결 구도가 재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최근 출간한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에서 신냉전의 징후를 4가지 측면에서 다뤘습니다. 첫 번째는 지정학적 대결, 두 번째는 지경학적 대결, 세 번째는 기술민족주의 충돌, 마지막으로 이념과 가치의 충돌입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인터뷰_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황재호 한국외대 교수와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여기서 제일 우려되는 것은 이념과 가치의 충돌과 지정학적 대결입니다. 저는 현재 상황을 차가운 평화(cold peace)와 신냉전의 경계선에 있다고 봅니다. 세계가 신냉전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한국, 그리고 세계 대부분 나라가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뜻을 같이하는 중견국이 협력해서 신냉전의 대두를 막아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 우리 모두의 책무라 하겠습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 4년이 신냉전으로 돌입하는 과정이 될지 아닐지 결정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현 상황을 신냉전이라 보고자 한다면 먼저 정의(定義)부터 확실히 내리고 판단 척도도 정해야 하겠습니다.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기제와 기능은 상실되는지, 양 강대국을 중심으로 세력이 규합되고 상호 적대시하는지, 이데올로기와 문명적 갈등이 표면화되는지 등등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신냉전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기후변화, 북핵, 이란 문제 등에서는 중국과 협력(cooperation)하고 무역과 기술 부분에서는 치열한 경쟁(competition), 그리고 가치, 지정학 부분에서는 대결(confrontation)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중국 공산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치를 내세워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포위 봉쇄하게 되면 다른 분야의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경쟁 또한 적대적 측면이 강화될 것입니다. 신냉전으로 가는 첩경이지요. 이를 인식한 헨리 키신저 박사는 “신냉전은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한다”고 강조하며 신냉전의 대두를 막지 못한다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이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그럼 우리에게 중국은 실재적, 실존적 위협이 될까요?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중국위협론을 거론합니다만 중국위협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보라면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게 중국위협론의 현실입니다. 현재 중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북한에 무기나 병참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항행의 자유에서도 우리가 실재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드 이후 우리에 대한 경제적 위협의 잔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은 우리가 미국의 동맹이고 중국이 미국에 위협을 가하면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위협 강도에 대한 인식이 서롤 다를 뿐 아니라 이를 우리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환치하고 중국에 적대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보수 여론 주도층과 언론이 중국위협론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미·중의 격렬한 대립은 한국 외교의 기본 스탠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뜻의 안미경중(安美經中) 경계선을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에 와서 안미경중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해 보입니다. 미국, 중국 모두 안보나 경제면에서 중요한 국가들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전통적 정책을 지속해야 합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미동맹이 중국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역시 아직까진 한국에게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파기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블링컨 국무장관이 유럽 방문 중 ‘유럽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면서 ‘그러한 선택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우리로서는 단기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지속하는 현상유지 전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게 어려울 때는 편가름의 미·중 진영 외교를 넘어서는 초월적 외교를 해야 합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반도에서만큼은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상대적 하락과 크게 대비됩니다. 책에서 쓰신 것처럼 병자호란 당시 뜨는 후금과 지는 명을 두고 척화파와 주화파 간 조선 내부의 치열한 외교논쟁이 있었습니다. 현재 미중 대립 속 우리 외교의 모습과도 중첩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마다 사안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노선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 의견이 나뉘는 것입니다. 미·중 간의 노선문제는 3가지 그룹으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 그룹은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국을 큰 위협으로 상정하고 미국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간단히 말해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그룹입니다. 두번째는 5000년 중국 역사를 되돌아보고 과연 중국이 현재 어떠한 실질적인 위협을 주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그룹입니다. 이 그룹은 남중국해 문제, 대만해협 문제 등에 대해 일방적인 판단을 내려 불필요하게 중국을 미리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가능성을 지켜보고 판단을 보류합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인터뷰_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황재호 한국외대 교수와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던 우리의 역사를 언급하며 부상하는 중국의 편으로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중 저는 두 번째 그룹에 속합니다.


-상상해보면 이사장님께서는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 아니면 척화파 중 어느 쪽이셨을까요?


▲당시 상황으로 치면 저는 주화파 최명길과 같은 사람l 아닐까요. 사실 3년 전 한 일간지 칼럼에서 저를 최명길로 비유하기도 했지요.


-우리 외교가 스스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명민한 스마트외교, 원칙에 기초한 결기외교, 국민적 합의외교, 공공외교란 외교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민한 외교와 공공외교는 명민한 외교부가 있어야 가능하고, 결기는 국가 지도자에 달려있으나 5년마다 바뀌는 정권으로 제도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에 근접하거나 가능성을 보여준 정부가 있을까요?


▲한국에서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했던 5가지 외교적 역량을 모두 갖춘 지도자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명민한 스마트외교의 역량을 보인 대통령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북방외교를 통해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맞춰 전향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햇볕정책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북한과의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녹색성장을 국제적 의제로 부각했지요. 현재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접목하면서 반전의 외교를 편 것도 명민한 스마트외교의 한 사례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원칙에 기초한 결기외교의 역량을 보여준 사례로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휴전협정 반대 등 과감한 태도를 보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좋은 사례지요. 1970년 닉슨행정부가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을 보이자 자주국방을 강조하고 방위산업을 촉진하여 국가안보태세를 다져놓은 것도 기억할만한 결기 외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에 1개 전투사단 파병을 바라던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굴하지 않고 비전투병력 1개 여단을 아르빌에 보내는 동시에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하여 용기 있는 목소리를 냈던 노무현 대통령도 결기 외교의 전형을 보여준 지도자라 하겠습니다.


단 국민적 합의 외교에 성공한 대통령은 찾기 어렵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국민적 합의 없는 일방적 외교를 펼쳤고, 민주화 이후에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2018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정도가 국민적 합의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9년 민주화 이후 가장 어려운 과제가 국민적 합의 외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공공외교의 경우 새로운 개념이며 이명박 대통령 당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속하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현 정부에서 외교부 개혁 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외교부의 경쟁력과 개선점은 무엇일까요? 우리 외교는 역사적 관성을 깨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정부 외교관의 개별적 경쟁력과 역량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외교부의 정책문화 또는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전통적으로 외교부는 한미동맹부 또는 4강 외교부로 불려 왔습니다.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물론 미국과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외교 상대입니다.


그러나 특정 강대국에 대한 과도한 치중은 창의적 외교를 어렵게 합니다. 보다 균형 있고 상상력에 근거한 파격적인 외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청와대와 외교부 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도 요구됩니다. 청와대는 외교정책을 조정 및 조율하는 곳이지 만들고 집행하는 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외교부가 하되 청와대는 이러한 정책이 대통령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처와 협의를 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강경화 장관 재임 동안 외교부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조직을 변화시키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냈다는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강 장관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선 강경화 장관을 청와대의 들러리가 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강 장관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생각하고 본인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물론 청와대 안보실장이 실질적인 사령탑 역할을 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역시도 국가안보보좌관을 중심으로 외교정책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정답은 없습니다.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여 조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황재호 교수의 외교 오딧세이] 문정인 "미·중 진영외교 넘어선 초월적 외교해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과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 대담./김현민 기자 kimhyun81@


-마지막으로 이사장님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으시다면?


▲‘진보현실주의자 (progressive realist)’라는 단어입니다.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저는 진보적입니다. 그러나 평화라는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이는 이상주의적 가치를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이상주의적 해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려면 상식과 순리에 따라야 합니다. 상식이란 현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 지식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고, 순리란 역사적인 큰 흐름 속에서 어떤 선택이 적합한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처지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정인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메릴랜드대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켄터키대 부교수, 듀크대 교수, 재미한국인 정치학회, 미국국제정치학회 등을 거치며 미국통으로 활동해왔다. 문 이사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동북아번영정책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국제정치학자다. 정부와 학계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문 교수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들어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맡은 바 있다.


정리/유인호기자

녹취/신의찬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 연구원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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