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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수정 2022.06.30 12:53입력 2022.06.3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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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vs 피츠버그 평범한 포스아웃 상황서 전력질주
전례 없던 고먼 주루에 홈 밟은 몰리나 득점 인정
美야구 통계분석기법 발달로 확률 높은 쪽으로 선택
공식 이름 없어 기록상으론 '야수선택으로 인한 2루 진루'

[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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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전에 없었던 주루가 나왔다. 지난 15일(한국시간)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홈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다. 세인트루이스는 3회말 폴 골드슈미트의 투런 홈런으로 2-0 리드를 잡았다. 선수들은 4회말 상대 실책 두 개와 볼넷으로 2사 만루 추가 득점 기회를 잡았다. 놀란 고먼과 에드문도 소사, 야디에르 몰리나가 각각 1루와 2루, 3루에서 뛸 준비를 했다.


타석에 들어선 골드슈미트는 피츠버그 유격수 디에고 카스티요 앞으로 평범한 땅볼 타구를 날렸다. 카스티요는 공을 잡아채 왼손으로 2루를 밟고 있던 대만 출신 2루수 장위청에게 느리게 던졌다. 평범한 포스아웃 상황. 1루 주자는 슬라이딩으로 2루를 파고드는 게 야구 상식이다. 하지만 스물두 살 루키 고먼은 전력 질주했다. 카스티요의 토스가 느렸던 탓에 판정은 세이프.


슬라이딩하지 않은 고먼은 2루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무리해서 정지하면 자칫 부상할 수 있다. 당황한 장위청은 침착하게 고먼을 3루 쪽으로 몰았다. 3루에 있던 소사는 고먼이 달려와 홈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장위청이 포수 제이슨 딜레이에게 송구하자 길이 막힌 소사는 3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귀루했다. 그러자 고먼이 협살에 걸렸고, 소사는 이 틈을 타서 다시 홈으로 내달렸다. 공을 쥐고 고먼을 3루 쪽으로 몰던 카스티요는 다시 홈으로 송구했고, 딜레이가 소사를 태그아웃해 이닝은 종료됐다.


혼잡한 런다운 플레이만 보면 세인트루이스의 실패로 보인다. 하지만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주자들의 표정은 밟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고먼은 매우 영리하게 플레이했다. 골드슈미트의 땅볼 타구 때 2루에 슬라이딩했다면 아웃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슬라이딩은 주루 속도를 떨어뜨린다. 토스를 한 카스티요는 아웃 타이밍을 확신했을 것이다. 2루에서 포스아웃이 일어나면 3루 주자 몰리나는 아웃 전에 홈을 밟더라도 야구 규칙에 따라 득점에 실패한다.


[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고먼은 거포 유망주다. 주력이 대단하지 않다. 2루가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슬라이딩. 세이프되면 몰리나의 득점이 인정되고 2사 만루 기회가 이어진다. 아웃이 되면 득점 없이 이닝이 끝난다. 두 번째는 전력 질주. 세이프 확률은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대신 2루에서 멈출 수가 없다. 상대 실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오버런으로 아웃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고먼은 ‘전부 아니면 전무’인 슬라이딩보다 한 점이라도 낼 확률이 높은 전력 질주를 택했다. 세이프 판정과 함께 몰리나의 득점이 인정돼 그의 판단은 보답을 받았다.


경기 상황도 대량 득점보다는 한 점이 필요했다. 마운드에서 루키 왼손 선발투수 매튜 리버라토리가 호투하고 있었다. 피츠버그는 타선이 약한 팀이라 2점과 3점의 리드 차이는 크다. 상대 선발투수 JT 브루베이커도 주무기 슬라이더를 앞세워 호투하고 있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투고타저 환경이다. 두 팀이 속한 내셔널리그는 올해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평균자책점은 지난해 4.21에서 올해 4.16으로 떨어졌다. 몰리나의 득점으로 세인트루이스의 승리확률은 58.9%에서 64.1%로 올랐다. 끝까지 우세를 이어가 3-1로 이겼다.


이 플레이를 영상으로 확인한 전준호 롯데 2군 주루 코치는 "내 경험으론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번도 없었던 플레이다. 예외 없이 저 상황에서 1루 주자는 슬라이딩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상적으로 슬라이딩을 했다면 아웃 타이밍으로 봤다. 팀에 한 점을 벌어준 스마트한 플레이였다. 이어진 협살 상황에서 상대 실수가 나오면 추가 득점도 가능하다. 우리 팀 내부적으로도 토론해보겠다"고 했다.


[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야구에는 '희생주루'도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프로야구 도루왕 출신인 전 코치의 눈에 고먼의 플레이는 훈련의 결과로 보였다. "2루를 밟은 뒤 몸을 트는 턴 동작이 좋았다. 자칫하면 3피트 라인을 벗어나 아웃이 된다." 그의 눈은 정확했다. 경기 뒤 올리버 마몰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우리 구단은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전력 질주로 2루 포스아웃을 깨뜨리는 전술을 가르쳐왔다"고 밝혔다. 골드슈미트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스터비 클랩 1루 코치는 고먼에게 전력 질주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미국 야구는 통계분석기법의 발달과 확산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그러다 보니 구단 운영뿐 아니라 경기 스타일도 비슷해졌다. 반대로 경기에서 의외성은 줄었다. 미국 스포츠전문지 스포팅뉴스는 최근 야구를 "상대를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카드게임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런 흐름에서 나온 고먼과 세인트루이스의 전례 없는 플레이는 찬사를 듣기에 충분했다.


유감스러운 점도 있다. 2루 포스아웃을 깨뜨린 고먼의 전력 질주는 공식 야구 기록상으로 ‘야수선택으로 인한 2루 진루’다. 너무 밋밋하다. 전례가 없었던 만큼 이런 플레이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다. 고먼은 자신의 아웃을 감수하면서 팀에 한 점을 안겨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했다. 야구에는 이미 ‘희생(Sacrifice)’이라는 이름이 붙은 플레이가 있다.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에 이어 ‘희생주루’라는 용어가 새로 생겨도 좋을 것이다.



한국야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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