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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검수완박과 변리사법 개정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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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검수완박과 변리사법 개정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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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한 구절처럼 4월 한달 대한민국은 검수완박에 대한 찬반론으로 국론이 완전히 분열됐다. 검찰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됐으니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 경찰에게 이양하자는 것이 검수완박 법안의 취지였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우리나라의 검찰제도는 수사와 기소 심지어 약식명령으로 대표되는 일부 사법권 행사 권한까지 많은 권력이 집중됐다. 그렇다 보니 오랫동안 개혁의 필요성이 논의됐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제1차 검경수사권 조정에 해당하는 검찰개혁 입법이 있었고, 검찰의 수사권은 대폭 축소되었던 상황이었다. 이번의 검수완박 법안은 이전에 시행된 미완의 검찰개혁 입법을 마무리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제1차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사법 실무에서는 제대로 수사받지 못하고 구제받지 못하는 범죄 피해자들의 아우성과 검경 간의 미묘한 불협화음을 제대로 조율하기 힘든 제도적 허점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실제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제1차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 등의 문제를 경험한 변호사의 수가 73%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개혁을 시작하기보다는 기존의 개혁이 지니는 문제점의 보완을 논의해야 할 때였다. 수사권이 갑자기 이양된 경찰의 수사능력을 향상시키고 지지할 수 있는 제도나 예산 측면의 해결책이 논의되어야 했고,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있어 협조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제도를 진지하게 구상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난 4월의 정부 여당은 이러한 합리적 문제제기를 모두 묵살하고 검찰 자체를 악마화하며, 일단 무조건적인 수사권 이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중을 선동해 나갔다. 그 와중에 공소시효 180일만 지나면 선거범죄를 암장할 가능성, 부담이 됐던 시민단체 등의 고발에 대한 이의신청권 폐지 등 정치권에게 이익이 되는 내용을 포함하는 꼼꼼함을 잊지 않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와 시민이 함께하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러한 입법의 문제점을 알리고, 졸속 입법을 막아내려 노력했지만 180석에 육박하는 거대 정당은 꼼수 탈당, 회기 쪼개기 등의 거침없는 방법까지 동원하며 기어코 입법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변호사 자격의 근간이 되는 변호사의 소송대리권을 법조유사직역인 변리사에게 사실상 이양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을 산자위 소위에서 결의해 통과시키더니 기어코 일주일여 만에 산자위 전체회의에서도 통과시켜 버렸다. 해당 입법은 과학기술계와 벤처기업들을 위해 과도한 변호사의 수임료를 절감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명분이었는데 흡사 검수완박의 논리와 비슷하고, 또 그 결과 또한 검수완박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것이 분명한 법안이라 할 수 있다.


특허소송이라 해도 이는 결국 민사소송에 해당하는데 특허소송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가처분 등 민사집행법과 손해배상액의 산정과 같은 것을 전혀 공부하지도 또 평가받아본 적도 없는 변리사들에게 소송대리권을 우선 이양하게 될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아야 될 것임에도 검사를 악마화하듯 변호사를 악마화하며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검수완박과 변리사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자들은 전문성 등의 유지를 위해 오랫동안 법률을 통해 보장돼 온 권한을 가진 직역을 해체함으로써 지지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본인들의 지지율을 올리려 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사고의 알고리즘을 우리는 포퓰리즘 또는 전체주의적 사고라 부른다.


그러나 잠시의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이러한 포퓰리즘 또는 전체주의적 사고는 종국적으로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부터 고통을 받게 만들 뿐이다. 대중의 일시적 인기에 기반으로 예외적인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에 맞서 법과 제도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침묵하던 모든 지성들이 연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상수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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