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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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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피자가게와 슈퍼·계단…관광객으로 ‘북적’
외국서 찾아온 관광객들, 방명록에 아쉬움 담기도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영화 '기생충'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기우(최우식 분)와 민혁(박서준 분)이 파라솔 아래서 맥주 한 캔을 기울이던 장면이 촬영된 아현동 돼지슈퍼 전경. 오른쪽 계단은 복숭아를 들고 기정(박소담 분)이 걸어가던 곳이다.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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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은 서울 시내 한적한 동네의 평범한 슈퍼마켓과 피자집을 명소로 만들었다. 동네 주민들이 무심하게 오르내리던 계단, 서울 도심과 주변 동네를 연결하는 터널도 외국인들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찾는 핫 플레이스로 떴다. 아카데미상 역사를 새로 쓴 명작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기생충 촬영 장소를 찾아가 본다.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영화 '기생충' 초반 기택(송강호 분) 가족의 주 수입원이 된 피자 박스 매장이자 일가족이 가정부를 몰아내기 위해 모의를 하던 '피자시대' 장면은 노량진동 스카이피자에서 촬영 됐다. 사진 = 김현우 PD

동작구 노량진동 ‘스카이피자’


영화 초반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의 주 수입원이 된 피자 박스 매장이자, 가정부를 몰아내기 위해 일가족이 공모를 벌인 피자가게인 '피자시대'는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스카이피자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가게 밖에는 봉준호 감독과 이 가게 사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고, 실내에는 촬영 소품으로 쓰인 피자시대 박스가 빼곡하게 쌓여있다. 테이블은 세 개, 그중 영화에 등장한 테이블 위엔 두꺼운 스케치북 하나가 놓여있다.


"외국 관광객이 하나둘씩 찾아오다 보니 방명록을 만들게 됐어요.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가게에서 다시금 느끼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적고들 가니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엄항기(65) 스카이피자 사장은 2년 전 첫 장소섭외가 왔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영화제작사) 바른손에서 연락이 왔어요. 촬영지로 섭외하고 싶다고. 봉 감독과 스탭이 와서 1~2시간쯤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더니 며칠 뒤에 '당첨되셨어요' 하고 전화가 왔죠. 알고 보니 우리 집 말고도 후보지가 일곱 군데 더 있었다네요."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가게 한 쪽에는 영화 소품으로 사용된 '피자시대'의 박스가 수북이 쌓여있다. 사진 = 김현우 PD


멋쩍게 웃는 사장의 미소 뒤로 피자 기계가 묵직한 기계음을 내면서 쉼 없이 돌고 있다. 원래 빵집을 운영했던 부부는 노량진으로 옮겨와 17년째 피자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식처럼 얇지도, 또 미국식처럼 두툼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두께에 바삭한 도우 끝 부분의 식감이 독특하다. "우리 피자 기계는 돌리면 시끄러워서, 영화에 등장한 피자는 우리 피자가 아니라 주문한 피자를 썼어요." '1급 비밀'을 흔쾌히 일러준 엄 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울상인데, 영화를 보고 먼 길을 찾아와준 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이곳도 5~6년 뒤면 사라지겠지요. 그때까지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량진뉴타운 1구역 재개발을 앞둔 탓에 스카이피자는 몇 년 내 사라질 운명이다.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아현동에서만 46년 째 가게를 운영해 온 돼지슈퍼 이정식 사장은 요즘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아졌지만 매출엔 큰 변화가 없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사진 = 김현우 PD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기우(최우식 분)와 민혁(박서준 분)의 파라솔 맥주 신은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에서 촬영됐다. 원래 슈퍼 앞에 파라솔은 없었다. 촬영을 위해 과일을 쌓아 놓고 파는 가판대를 가게 정면에서 측면으로 옮기고 파라솔을 코너에 설치했다. 이정식(77) 돼지슈퍼 사장은 "우리 가게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그런가 가게 이름은 바꿔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파라솔 뒤로 바닥에 세워놓는 간판에 우리슈퍼라고 나갔지요"라며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아현동 토박이로 이 동네서만 46년째 장사를 계속해 온 이 사장과 김경순(73) 씨 부부는 처음 섭외 제안이 왔을 땐 한나절 찍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촬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송강호 배우도 잘 몰랐고, 봉준호 감독은 전혀 몰랐죠. 그런데 촬영 날 가만히 보니 감독이 앉아서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 전반을 관장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칸에서 상 받았을 때도 기뻤지만, 아카데미서 4관왕을 차지한 걸 보노라니 내 일처럼 기쁘더군요."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가게 이름이 너무 강렬한(?) 탓에 영화에선 우리슈퍼로 등장한 돼지슈퍼는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기우(최우식 분)와 민혁(박서준 분)의 소주 신이 촬영된 장소다. 사진 = CJ E&M

오래된 가게 역사만큼이나 동네에서 '돼지슈퍼' 하면 알아주던 시절도 있었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지역 재개발 이야기가 오가면서 손님이 줄어 장사는 점점 힘들어졌다고 한다. "영화가 잘 되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할 일이지만, 매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다들 사진만 찍고 가니까요." 가게 앞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방문객들이 분주히 오갔지만 슈퍼에 손님은 없었다. 그래도 부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에 우리 가게가 등장한 것 자체가 영광이지요.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서로 의지하면서 슈퍼를 지키려고 합니다."


[인스타산책] 재개발로 사라질…‘기생충’ 촬영지 영화에서 갑작스런 폭우로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서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이 황급히 도망쳤던 계단은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계단이다. 사진 = 김현우 PD

돼지슈퍼 오른쪽 코너를 돌면 곧장 기정(박소담 분)이 복숭아를 들고 뛰어가던 계단이 나온다. 아현동 계단이 박 사장(이선균 분)네로 향하는 이미지였다면, 갑작스러운 폭우로 기택네 가족이 도망쳐 내려오는 부암동 자하문터널과 계단은 박 사장 집에서 황급히 떠나오는 이미지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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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속에 비춰진 서울 곳곳의 풍경은 두 가정 간 계급 차를 선명하게 시각화했고, 대중들은 그 미장센 속에 숨은 디테일에 열광했다. 세트보다 더 세트 같던 장소들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공교롭게도 피자가게와 슈퍼 촬영장소는 재개발을 앞둔 서민들의 삶의 무대. 몇 년 뒤에는 영화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기택네 가족이 처했던 애틋한 감정마저 자아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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