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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무연고사 리포트]먹먹한 흔적에 자꾸 멈칫…유품정리 현장에 가다

수정 2021.08.27 13:00입력 2021.08.27 13:00

<2>우리 곁의 무연고자들

묵념 후 시작한 무연고 사망자 유품 정리
추위와 배고픔에 홀로 세상과 이별
빚 독촉에 집 안 창문엔 암막 설치
냉장고엔 음식물 가득…레시피 적힌 노트도

[2021 무연고사 리포트]먹먹한 흔적에 자꾸 멈칫…유품정리 현장에 가다 지난 4일 방문한 무연고 사망자 A씨의 집. 정리 안 된 옷가지 등이 놓여 있고 창문에는 암막이 설치돼 있다./사진=이정윤 기자 leejuyoo@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고형광 팀장, 유병돈 기자,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지난 겨울 홀로 지내다 굶주림에 돌아가셨다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워요."


지난 4일 오전 서울의 한 주택. 어지럽게 널브러진 옷가지와 책, 종이 박스는 누군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음을 알려줬다. 창문에 붙여놓은 암막 탓에 내부는 어두웠다. 오빠와 연락이 끊겨 가족 없이 살아가다 치매에 덜컥 걸려버린, 혼자서는 음식조차 먹을 수 없던 70대 A씨는 그렇게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한쪽에서 누군가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는 스스로 집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보일러조차 켜지 못할 정도로 치매가 악화됐다고 한다.

고인이 남긴 흔적을 정리하는 일은 생을 마감한 방에서 향을 피우고 예를 갖추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10여초 묵념을 하고 유품 정리를 진행했다. 창문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암막부터 제거했다. 고인은 생전 빚 독촉에 시달렸다. 잘못 선 보증 탓이었다.


유품 정리를 진행한 이창호 천국양행 대표는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창문이나 전등에 암막을 설치해 놓은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의 집 안방과 화장실, 부엌 창문, 그리고 대부분의 전등에는 검정 비닐이 덧씌워져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임대료, 전기료 미납 요금 납부를 안내하는 독촉장도 돌아다녔다. 또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걱정한 탓일까. A씨는 주민등록증을 보아도 신상정보를 알 수 없게 사진과 이름 난을 검정으로 칠했다.

암막 제거가 끝나고 옷가지와 책 등 2개의 방에 있던 각종 잡동사니를 포대자루에 넣었다. 철과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은 따로 담았다. 먼지가 가득 쌓인 서랍장은 집 밖으로 옮겼다.재활용이 불가능한 것들은 폐기 처분을 위해 따로 구분했다.


[2021 무연고사 리포트]먹먹한 흔적에 자꾸 멈칫…유품정리 현장에 가다 이창호 천국양행 대표가 무연고 사망자 A씨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사진=이정윤 기자 leejuyoo@

안방에선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발견됐다. 비록 암막을 설치하고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했지만 그는 종교 활동에 꽤 적극적이었다. 성경책과 성경 공부를 하며 메모를 한 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트에는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설과 기도문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스마트폰 쉽게 배우기'라는 책과 와이파이 사용법을 적어놓은 A4 용지에서도, 여름과 겨울옷을 나눠 차곡차곡 담아 놓은 박스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방 정리가 한창일 때 부엌 청소도 시작됐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음식은 고인이 배고픔에 시달리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고기와 장아찌, 배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가 가득했다. 부침개를 만들어 먹다 남은 반죽, 얼려놓은 잡곡밥도 보였다. 고인은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요리'라고 적힌 노트에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강된장' '장조림' 등 수십가지의 레시피가 가득했다. 유품정리는 오후까지 계속됐다. 보통 고인이 남겨놓은 유품의 양에 따라 정리가 끝나는 시간이 결정된다. 다만 A씨의 집은 정리가 그나마 잘 돼 있어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고인이 사망한 시점이 겨울이어서 악취나 오염이 거의 없어 작업이 수월했다.


[2021 무연고사 리포트]먹먹한 흔적에 자꾸 멈칫…유품정리 현장에 가다 무연고 사망자 A씨의 냉장고에 음식물이 가득하다./사진=이정윤 기자 leejuyoo@

이날 기자도 정리에 참여했다. 고인의 손길이 닿은 유품을 하나하나 만지고 눈으로 보고 분류했다. 숨진 자리를 정리할 때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기아와 추위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수 시간 계속된 작업 끝에 짬을 내 목을 축였다. 옆방에서 정리를 하던 이 대표가 "처음인데 괜찮냐"고 물었다. 오롯이 혼자서 세상과 이별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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