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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무리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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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대개 기억은 강렬한 것들만 남는다. 계절이 가늠되지 않는 어느 밤이었다. '그들' 외에는 고요했지만, 아마도 모두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들은 약간 취했던 것 같다. 2층 침상 어두운 곳에서 여럿이 하나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 끊임없이 낄낄거렸고, 깔려있는 이는 울부짖었다. "이렇게는 군 생활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웃었고, 깔아뭉갰다. 우리의 침묵 속에서 그 웃음과 신음은 지독히 적나라했다. 참혹한 밤이었다.


이제는 오래 되고 희미해져 사물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림처럼 남아있다. 감정은 훨씬 선명히 각인됐다. 소름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악(惡)이라는 단어 외에 표현할 길 없는, 인간의 가학성을 보고 들었다. 그야말로 일상이 폭력이던 시절이었지만, 유달리 그 날 밤의 참극은 사무쳤다.


'인간 이하'라거나 '짐승만도 못하다'는 등의 표현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인간 내면에 뿌리 내리고 있는 폭력성향을 생각하면 그저 경악이나 비난의 수사일 뿐, 적확한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적인 이미지와 상반될수록 자극이 크다. 그래서 10대의 폭력 사건들은 더 큰 화제가 되곤 한다. 그리고 결코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보도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야마기와 주이치 교수는 저서 '인간 폭력의 기원'에서 그 뿌리를 동물적 본성이 아닌 문명에 있다고 설파했다. 농경과 정착생활로 인해 생활의 경계가 생겨 분쟁을 일으키고, 언어를 통한 추상적 사고와 신화·종교 등으로 강화된 집단의 정체성이 외부에 대한 공격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물론 야생 침팬지도 전쟁을 한다. 혈연관계에 있는 수컷들이 집단을 만들어 이웃 무리에 침입해 상대 수컷이나 암컷을 덮쳐 깨물고 찢어 죽인다. 그러나 침팬지의 싸움과 인간 집단의 싸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침팬지는 각 개체의 이익과 욕망에 휘둘려 싸움을 일으키는 데 반해 인간의 싸움은 늘 무리에 봉사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 일어난 폭력 사건들을 보더라도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들어맞는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보이는 개인이라도, 집단으로 묶일 때는 오직 집단의 이익만을 최상의 가치로 치부하는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 집단은 이기심을 포장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폐쇄적 공감능력이고, 진짜 공감능력의 마비 증상일 수도 있겠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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