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압박에도 4대 금융지주 정관 개정 제한적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은) 시행 시점과 무관하게 이 자체로 신호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1월28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좋은 일이라고 판단되면 미룰 이유가 없다."(2월12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이달 말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융당국 수장들이 잇달아 금융지주사에 선제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공개적으로 촉구했지만, 당국의 핵심 요구인 최고경영자(CEO) 연임 요건을 강화한 금융지주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를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질타한 이후, 민간기업 경영 개입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배구조 개선을 우회적으로 압박해온 금융당국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신한금융을 끝으로 KB·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이사회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달 말 주총을 앞두고 열린 각 금융지주 이사회는 회장 연임 시 주총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정관을 변경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였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해 정관을 개정한 곳은 없었다. 우리금융만 CEO 3연임에 한해 주총 특별결의를 적용하도록 일부 정관을 손본 게 전부다.
이는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CEO 연임 시 주총 특별결의 도입 ▲사외이사 임기 3년 단임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현재 일반결의(출석 주주 과반 찬성) 사항인 CEO 연임을 특별결의(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로 전환해 연임 문턱을 대폭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주요 금융지주는 현재 최장 6년까지 가능한 사외이사 임기를 3년 단임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도입하지 않았다. 이사진 교체 폭도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2명 가운데 올해 임기 만료 대상은 23명이었지만, 실제 교체 인원은 각사 1~2명씩 총 6명에 그쳤다.
이는 가이드라인 발표와 법 개정 이전이라도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이른바 '참호'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셀프연임' 구조를 유지해왔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관치 금융 문제로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한 이후 금융당국의 움직임은 한층 빨라졌다. 다만 관치 논란을 우려해 주총 이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려던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가 선제적으로 당국안을 반영해 정관을 개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계산이 빗나갔다.
금융권은 세부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안을 우선 도입하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 자체가 금융회사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세부 기준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먼저 반영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특정 지배구조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시점에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주총 안건 투표에서 국내 금융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획일적 기준에 따라 반대 의견을 낼 수 있고, 소액주주까지 동참할 경우 경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면서 "연임 요건이 강화될수록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이 커지는 점도 부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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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들이 선제적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지 않자, 주총 이후로 예정했던 지배구조 검사 결과와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지주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주총이 임박한 상황에서 금융지주가 이번 주총 안건에 반영하긴 쉽지 않아,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주총 전 내놓더라도 '뒷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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