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경제적 부담 없는 '국가책임제' 마련돼야"
전남대학교병원 분만실의 불을 33년간 밝혀온 거목이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맞는다. 주인공은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을 맡고 있는 산부인과 김윤하 교수. 지난 1993년 전남대병원에 첫발을 내디뎠던 청년 의사가 이제는 호남 지역 고위험 산모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대부로 불리며 정든 교정을 떠난다.
김 교수가 지켜온 33년은 대한민국 출산 지도가 변해온 고통스러운 기록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처음 가운을 입었을 땐 분만실이 늘 북적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의 산부인과들이 문을 닫고, 멀리 섬마을이나 산간 지역에서 헬기를 타고 우리 센터로 오는 고위험 산모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많은 밤을 분만실에서 지새웠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태어난 300g의 초미숙아가 건강하게 자라 성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는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산과(Obstetrics)는 의료진의 체력적·정신적 소모가 극심하고 의료사고 위험도 높아 전공의 기피 1순위로 꼽히지만, 김 교수는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경험이 나를 30년 넘게 이 자리에 묶어두었다"며 "이것이 바로 지역의 필수 중증 의료 시스템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체감하는 저출산의 현실은 지표보다 훨씬 심각하다. 김 교수는 "전공의 시절 우리 병원의 한 달 분만 건수는 120건이었으나 지금은 60건으로 반토막이 났고, 한때 월 300건 이상 분만을 했던 인근 병원은 이제 1년에 10건도 채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초저출산과 산부인과 전공의 기피 현상이라는 사회적 화두 앞에 김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 국가를 향해 뼈아픈 조언을 남겼다.
"지난해 울산에서 생후 5일 된 아기가 뇌손상을 입은 사건과 관련해 병원이 16억원이 넘는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는 만큼 현장의 의료진에게 사명감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필수의료진이 법적·경제적 불안감 없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 즉 '국가 책임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의 분만실 불은 영영 꺼질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불안해하는 후배 의사들에게 김 교수는 산부인과만의 독보적인 가치를 역설했다.
김 교수는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생명을 창조하고 받는 일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한 만큼 로봇이 분만을 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라며 "인류를 유지하는 자연 생리 현상인 임신과 출산을 책임진다는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김 교수는 33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교수 타이틀은 내려놓지만, 퇴임 후에도 지역의료 발전을 위해 로컬병원에서 진료를 보며 역할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정년은 규정돼 있지만, 생명을 향한 그의 사명에는 은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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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근무 마지막 날인 오늘도 수술이 2건 있다. 그만큼 제 손을 거쳐 간 1만여 명의 아이가 이제는 이 사회의 든든한 일원이 돼 있을 것"이라며 "그 아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부모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호남취재본부 민찬기 기자 coldai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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