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 공동망' 혁신 시급
사람·생태계 묶는 전략에 사활
"한국은 왜 이리 늦나? 서두르지 않으면 관세를 25%로 올리겠다."
지난 1월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서슬퍼런 재촉 한마디에 우리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었다. 고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미 현지 투자 계획을 앞당기고 공장 건설을 서둘렀다. '생존을 위한 속도전'에 내몰린 것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은 급변했지만 그 우려는 여전히 크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과 뒤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보편적 수입 관세(15%) 도입, 조사 지시로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 산업은 관세의 새로운 소용돌이에 직면했다.
대미 투자와 기업 경영의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관세와 맞물린 우리의 해외 투자 확대가 급박해진 건 사실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이면에 우리 경제의 뿌리가 통째로 비는 '제조업 공동화(空洞化)'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이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해 앞다퉈 태평양을 건널 때, 그 자리에 남겨질 중소 협력사와 지역 경제의 공동 운명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냉혹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생존 전략이 바로 '생태계 경제'다.
생태계 경제는 한 기업의 경쟁력이 개별적인 성취가 아니라 부품·장비·소재·물류·금융·인력까지 촘촘하게 얽힌 산업 공동체 전체의 체력에서 나온다는 개념이다. 삼성, 현대차, LG가 세계 무대에서 버틴 비결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그들 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도를 지닌 협력사들, 기술·금융 네트워크라는 구조적 기반이 있다.
최근 대기업과 은행이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대규모 협력사 지원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단순한 시혜로 치부할 수 없다. 국가 산업의 모태를 보호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자 구조적 안전장치다. 미국 투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국내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묶어야 하기에, 이를 반영한 행보기도 하다.
그럼 지금 필요한 정책의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전략산업-협력사-금융'의 삼각 연계를 철벽처럼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가 재촉하는 해외 진출이 가속화할수록 국내 협력사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출이 아니라 공급망 안정자금, 스마트 설비 업그레이드를 위한 집중 투자다. 대기업의 글로벌 확장이 성공하려면 그 뿌리인 국내 협력사의 기술력이 동반 상승해야 한다.
둘째로 '국내 제조 공동망'을 혁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첨단 공장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 본토에는 이를 통제하는 핵심 '마더 팩토리'는 반드시 남겨야 한다. 지역별로 공동 장비센터를 세우고 중소 협력사들도 활용할 수 있는 공동 창고와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물류 허브도 확충해야 한다. 협력사가 대기업의 이전에도 흔들리지 않고 독자 생산력을 확보해 세계 시장에 직접 부품을 납품할 수 있는 '독립형 강소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생태계를 재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생태계에 묶는 전략'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일자리는 규제로 보호되기보다 경쟁력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기업이 해외로 거처를 옮겨도 끝까지 이 땅에 남는 것은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인재풀이다. AI, 로봇이 제조 현장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기에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과 지역 특화 인재 양성 플랫폼 구축도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업이다.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동 인재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산업 생태계에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일자리는 증발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한 번 무너진 산업 생태계를 다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회사의 공장이 아니다. 지난 50년간 우리 경제가 피와 땀으로 일궈온 '제조업이라는 거대한 숲'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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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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