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기사는 결과로 자기를 증명한다. 이름 뒤에는 기록이 꼬리표처럼 늘 따라붙는다. 특히 누적 상금은 바둑 인생의 훈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바둑 누적 상금 100억원을 돌파한 인물은 세 명에 불과하다. 신진서 9단은 지난 6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 우승을 견인하며 '100억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바둑 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스(GoRatings)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 세계 랭킹 1위가 바로 신진서다. 대단한 기록을 보며 드는 첫 번째 생각은 100억 클럽에 이름을 올린 다른 두 명이 누군지에 관한 궁금증이다. 수년간 세계를 호령해야 밟을 수 있는 고지를 먼저 올랐던 주인공은 누구일까. 처음으로 100억원을 돌파한 인물은 '바둑의 신'으로 불렸던 이창호 9단이다. 이창호는 16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던 살아 있는 바둑 전설이다. 그의 명성과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누적상금 100억원 돌파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100억원 클럽의 나머지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창호, 신진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누적상금을 확보한 박정환 9단이다. 세계 바둑 최강으로 평가받던 이창호, 신진서와 비교할 때 화려함은 덜할지 몰라도 단단함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게 박정환이다. 그는 바둑의 골격인 포석과 수읽기, 끝내기 모두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어느 한 영역의 최강자는 아닐지 몰라도, 모든 영역에서 무너지지 않는 기사다. 탄탄한 전략을 토대로 전개하는 박정환의 바둑은 쉽게 뚫기 어렵다. 박정환이 이창호가 활약하던 2011년부터, 신진서가 활약하던 2023년까지 세계 랭킹 3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단단한 바둑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거센 풍랑 앞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정치도 박정환 바둑처럼 역량을 단단히 다져야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마음이 급하다고 열매부터 거두려 해서는 곤란하다. 쉬운 길만 찾다 보면 한계에 직면한다. 지지층 결집에만 기대는 정치로는 선거를 돌파하기 어렵다. 포장만 화려하거나 대중 입맛만 좇는 정치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생각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당이 존재하는 이유, 국민과의 약속이 담긴 강령에 답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고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강령을 통해 강조하는 내용이다.
여야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천을 안 해서다. 정치는 결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계획이 아닌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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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유연하면서도 우직해야 한다. 환골탈태를 위해 필요하다면 손해를 무릅쓰고 나아가야 한다. 물러서야 할 때는 눈앞의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 비바람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겸허히 감당하는 것도 정치의 일부다. 힘겨운 그 시간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유 있는 기다림이다. 단단함은 화려하지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버티는 힘이 결국 선택을 받는다.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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