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는 AI'서 '움직이는 AI'로
VLA가 여는 지식·육체 노동의 대전환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인간에게 쉽고 하찮은 일은 오히려 어려워한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말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를 닦고 옷을 입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이런 행동을 수많은 문장과 데이터로 쪼개 이해해야 했다. 현실 세계의 무한한 변수를 '규칙'으로 정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 앞에 공개된 로봇의 움직임이 어색하고 서툴게 느껴졌던 이유다.
그런 '모라벡의 역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6'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권투를 하고, 계단을 오르며, 공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로봇들, 즉 '물리적 인공지능(피지컬 AI)'이었다. 마음AI의 최홍섭 대표와 원미르 팀장이 쓴 '피지컬 AI 메가 트렌드'는 이 흐름의 핵심 동력으로 시각·언어·행동(VLA) 모델을 꼽는다. 거대언어모델(LLM)과 시각언어모델(VLM)이 언어와 시각 이해에 머물렀다면, VLA는 이를 실제 행동으로 연결한다는 설명이다.
인간이 감각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듯, AI 역시 방대한 이미지·텍스트·행동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이터 드리븐'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 산업의 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22~2023년 업계가 위기를 겪은 배경에는 거의 무한한 예외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 '롱테일 문제'가 있었다. 이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규칙을 코드로 명시하는 대신, 방대한 주행 영상을 학습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전략을 전환했다.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은 하드웨어 중심 접근과 대비되는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의 상징이 됐다.
책은 이를 '챗GPT 이후의 다음 장'으로 규정한다. 지난 몇 년간 지식 노동 시장을 빠르게 재편한 생성형 AI처럼, 육체노동 역시 피지컬 AI를 통해 구조적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라는 현실 속에서 피지컬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특히 피지컬 AI는 단순한 로봇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사슬(밸류체인)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액추에이터와 센서 같은 하드웨어에서 AI 모델, 반도체로 이어지는 생태계 전반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피지컬 AI가 빠르게 도입될 산업으로는 농업, 국방, 건설, 제조 분야가 꼽힌다. 인건비 절감뿐 아니라 공기 단축, 안전성 향상까지 고려하면 산업적 파급력은 더욱 크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한계, 발열과 전력 소모, 온디바이스 칩 최적화 등 기술적 장벽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피지컬 AI의 진보는 "얼마나 인간처럼 보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에게 유용하냐"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책의 메시지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비교도 흥미롭다. 미국은 빅테크 중심의 플랫폼과 자본,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제조 기반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앞세워 미국을 바짝 추격한다. 이 틈에서 책은 한국의 가능성도 짚는다. 정밀 제조 역량과 시스템 통합 능력이 피지컬 AI 시대에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과감한 규제 완화와 표준 선점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챗GPT가 어느 순간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왔듯, 몸을 가진 AI 역시 임계점을 넘는 순간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다만 그 속도와 방향은 산업 구조와 정책, 자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지난해 '피지컬 AI 1등 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운 바 있다.
지식 노동과 육체노동이 동시에 재편되는 시대가 다가온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남을까. 책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을 강조한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인지,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 선택인지 판단하는 자기만의 기준이다. 기술이 곧 시장이 되는 시대일수록 특정 기술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근본적 역량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AI가 쏟아내는 무수한 결과물 속에서 옥석을 가려낼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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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메가 트렌드|최홍섭·원미르 지음|위즈덤하우스|340쪽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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