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 IEEPA 기반 상호 관세 위법 판결
트럼프, 무역법 122조로 우회…韓 선택지 여전히 좁아
요즘 필자는 안식년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보내볼까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친구가 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선물을 보내면 관세가 많이 붙을 수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했다. 딱히 비싸지도 않은 선물이지만 이젠 필자의 일상 대화 속에도 "관세가 붙을까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 관세 뉴스를 보면 너무 추상적이다. 불과 며칠 전 미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중 일부가 국제긴급경제권법(IEEPA)상 법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응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전 세계 수입품에 10~15%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이게 무슨 의미이며,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한 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경제적 비상사태'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심각한 무역적자였다. 이 비상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정부는 수입 규제를 강화했고 그 수단으로 선택한 게 관세였다. 그럴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IEEPA였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대외적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때 의회 승인 없이도 국제 금융이나 무역 거래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여기서 트럼프 행정부는 아예 새로운 '비상' 관세 체계를 만들었다. 거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 관세를 매기고 나라별로는 상대국이 미국 제품에 매기는 평균 관세만큼의 상호 관세를 덧붙였다. 실제 백악관에 따르면 한국엔 약 20%대 중반의 상호 관세율이 제시됐고 기본 10%에 추가돼 총 관세가 30%를 웃도는 상황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이번 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러한 '비상' 관세가 IEEPA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IEEPA는 보통 테러 자금을 동결한다거나, 이란·북한처럼 위협 국가로 규정된 대상에 경제적 제재를 가할 때 근거로 사용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사실상 의회 승인 없이 새로운 관세 체계를 만들어버렸다. 이에 '비상사태만 선포하면 대통령이 수입품에 세금을 마음대로 덧붙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고 이 문제를 둘러싼 법적 공방 끝에 연방대법원은 그렇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이 비상 관세 체계를 지렛대 삼아 여러 나라와 관세·투자 협상을 벌여왔다는 점이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한국 정부는 미국 내에 약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는 대신 미국은 한국에 적용하던 상호관세를 25%에서 15%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미 대법원이 비상 관세의 효력을 없애버렸으니, 한국과 맺은 이런 관세·투자 협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애초에 법적 근거가 부족한 관세에서 출발했으니, 그 관세를 기준으로 한 대규모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비상 관세가 갖는 법적 효력이 사라졌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다른 법적 수단으로 협상력을 유지하려 한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법적 근거로 1974년 무역법 122조를 꺼내 들었다.
무역법 122조는 IEEPA와는 성격이 다르다. 굳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같은 경제 상황이 있을 경우 대통령이 최대 15%, 최대 150일 동안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다. 이를 근거로 우선 10% 글로벌 관세를 선포하겠다고 했고 곧이어 이를 15%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비상사태 명분이 없어지자 이번엔 심각한 무역 적자라는 경제적 명분을 적용한 셈이다.
결국 법적 근거가 IEEPA든, 무역법 122조든 힘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 대해서도 글로벌 15% 관세 위에 별도의 상호 관세나 안보 관세를 덧붙여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입장에서는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카드로 꺼내 들 수밖에 없는 협상 구도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비상 관세가 위법 판결을 받았다는 뉴스만 보면 한시름 놨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관세를 둘러싼 협상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어떤 조건으로, 누가 얼마만큼 비용을 나눠 부담할 것인가 하는 힘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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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영 美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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