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학교 떠날 때 이미 정신건강 악화
부처 간 '통합 거버넌스' 구축 시급
"청소년 정신건강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돼야 합니다"
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은 25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더는 방치하지 말고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면 앞으로 계속될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청소년들이 하루빨리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어서다.
기 단장은 최근 학교 밖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정부의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 효율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과거엔 비행이나 가정 형편이 학업 중단의 주원인이었다면 최근엔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학교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급부상했다.
▲지금도 청소년들의 심리 정서적 어려움의 배후에는 경제적 곤궁, 부모의 갈등과 이혼, 아버지의 과도한 음주 문제나 과격한 행동, 부적절한 양육 방식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청소년 당사자의 성장 발달 과정에서의 문제나 아주 예민한 또래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 괜한 오해, 뒷담화,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과 같은 문제들이 학교 적응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에 대한 친구들의 평판에 매우 민감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청소년들은 학교를 떠날 때 이미 정신건강이 악화하고 지지적인 자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상태가 관찰되고 선을 넘는 행동은 제어가 됐지만 학교를 떠난 후로 아무런 도움이나 제재 없이 방치되기 때문에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우울해서 학교를 그만두는데 소속감이 사라지니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학교 밖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이 재학생보다 현저히 높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학교 밖에서 더 심한 고립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 사회가 학교 다닐 나이의 청소년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취업하는데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사기당하기 쉽다. 더 큰마음의 상처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성적인 유혹이나 성희롱에 노출되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 적개심, 자신에 대한 불신, 열등감이 점점 커지고 우울감,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학교는 탈출했는데 사회라는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가 골든타임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내 Wee클래스나 담임교사의 개입은 한계가 명확한 것 같다. 학업 중단 징후(결석, 부적응)가 보일 때 즉시 의료적 개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퇴라는 선택지로 귀결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좀 더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다학제 사례관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일시적인 상담이나 단순한 훈계만으론 한계가 있다. 경제적인 지원,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집단 치료, 부모에 대한 개입, 필요하면 약물이나 도박, 게임 중독에 대한 치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교육적인 차원의 조치 등이 개인 맞춤형으로 포괄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학교라는 시스템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능동적으로 찾아내 정신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스크리닝 체계를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접근 가능한 길목을 찾아야 한다. 취업이나 알바하기 전에 신체검사나 입대를 위한 병무청 신체검사 혹은 건강보험의 생애주기별 건강검진 등 접근 가능한 방법을 찾아 도와야 한다. 청소년기에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하는 것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보호자 동의가 필수인 현행 의료법과 제도가 얼마나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나.
▲보호자가 청소년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아 치료를 거부하거나 아예 치료비 지원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부모가 쉽게 치료를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반면 보호자가 일방적으로 무리해서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고 공공 후견인이나 사전치료의향서 등 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정신질환 낙인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과 교육 홍보도 더 필요하다.
-학교(교육부)를 나오면 성평등가족부(꿈드림센터) 관할이 되고, 정신 건강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아이는 한 명인데 관할 부처가 쪼개져 있다.
▲청소년의 정신건강이나 중독 문제에 있어 거버넌스 분절과 산재는 큰 문제다. 정부가 보건복지부, 교육부, 성평등가족부 등으로 분산된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꿈드림센터가 학교 밖 청소년의 거점 역할을 하지만 정작 센터 내에 임상심리사나 전문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지역의 청소년 관련 센터들의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각 센터가 역량을 키우고 지역사회 내에서 연계하고 연대하면 가능할 수 있다. 청소년 센터들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들과 더 긴밀하게 연대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사업이 학교 밖 청소년에게 실효성을 가지려면.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사업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접근이 어렵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이런 사업이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아주 경미한 문제가 있지만 면담할 시간이 나는 분들이 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고, 생물학적 치료를 해야 하는 분들이 면담을 요청하거나 면담이 어려운 소아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오기도 한다. 어떤 지방의 지자체엔 면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다. 사업의 대상자를 명확하게 하고 심리상담 서비스도 전문화, 표준화해야 한다.
-위기 청소년에 대해 공공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최근 자해나 자살과 같은 개인의 심각한 위기에서 개인의 정보 보호에 우선해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인 정보 제공을 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개선됐다. 자해나 자살은 개인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그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가 누적된 것이 개인에게 투사된 것인 만큼, 개인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되 공공이 최선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매우 높다. 물론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등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정은 법적으로 결정이 돼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진정한 정신적 회복과 자립이란 어떤 상태인가.
▲비록 과거에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있고 현실이 가혹하고 개인적인 장애가 있을지언정 건강하고 생산적인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자립이다.
-선진국의 청소년 정신건강 조기 개입 모델 중 한국의 현실에 가장 시급하게 도입해야 할 시스템이 있다면.
▲헤드 스페이스(Headspace)는 호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종합 지원 플랫폼으로 12~25세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정신건강과 관련된 지원을 제공한다. 정신적 어려움뿐 아니라 신체 건강, 학업·진로, 약물중독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온라인·전화·센터 방문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을 잠재적 문제아가 아닌 치료와 보호가 필요한 아픈 아이들로 바라보기 위해 우리 사회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와 같은 저출산 초고령사회에서 인적 자본의 확충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며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청소년의 정신건강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돼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지속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국가를 통합하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제 나서야 한다.
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은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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