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2025년 3분기 자금순환 통계는 우리나라 가계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음을 보여준다. 개인(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는 2421조원인 반면, 금융자산은 5980조원에 달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41%로 나타났다. 2008년에 이 비율이 51%였던 것을 고려하면 대폭 개선된 셈이다. 그만큼 매년 부채보다는 금융자산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로 2020년 이후 개인의 자금 잉여는 지속적으로 확대돼 2024년에는 216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5년 1~3분기에도 202조원으로 확대 추세에 있다.
문제는 이렇게 축적된 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운용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 개인의 금융자산 구성은 여전히 예금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2025년 3분기 기준 현금 및 예금 비중은 44%에 달하고, 보험·연금이 28%, 주식·펀드가 24%, 채권은 고작 3%에 불과하다.
미국 가계의 경우 2025년 2분기에 금융자산 중 현금·예금 비중은 11%로 낮고 주식 비중은 55%로 매우 높았다. 우리 가계가 자산 운용에서 안정성과 유동성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은 성장성과 투자수익을 우선한다. 이 차이는 장기적으로 가계의 금융자산 증식 속도에 큰 격차를 만들고 있다.
우리 가계의 예금 선호 현상에는 몇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 가계의 자산 인식은 여전히 부동산 중심이다. 금융자산은 장기 투자 수단이라기보다 부동산 구매를 위한 대기 자금 성격이 강했다. 둘째,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금융투자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셋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원금 보전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화됐다. 넷째, 과거 고금리 시절의 기억도 영향을 미친다. 예금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시대의 관성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은 이미 크게 바뀌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금리는 구조적인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1%대 후반 수준이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0%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금리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자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에서는 금리가 오르기 어렵다. 여기에 지난해 3분기에 우리 기업들이 981조 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면서 은행 대출 수요가 줄고, 은행이 대신 채권을 매입하는 흐름도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예금 중심 자산 운용은 실질 구매력을 지키기 어렵다. 명목금리가 하락하면 예금 이자는 줄어들고,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은퇴 이후 자산 운용의 핵심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이다. 예금은 원금 보전에는 유리하지만, 장기간 물가를 이길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반면 채권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으면서도 이자수익과 금리 하락 시 자본차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개인의 금융자산 중 채권 비중은 3%에 그치고 있다.
자산 배분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첫째, 예금 비중은 비상자금 수준으로만 유지하고 장기 자금은 투자자산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채권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국공채, 우량 회사채,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는 금리 하락기에 안정적인 수익원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수익성과 더불어 안정성을 중시해야 하는 50대 이후의 자산 배분에서 은행예금보다는 채권 투자가 더 바람직스러워 보인다. 셋째, 주식 투자는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배당주 중심으로 질적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의 자금 잉여 규모가 확대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모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다. 예금에 머무는 자산은 안전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저성장·저금리·고령화라는 구조적 환경 속에서, 한국 가계의 자산 운용 전략도 한 단계 성숙한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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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익 내일희망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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