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복합 주민, 30년 무료급식소 폐쇄 주장
"기부·봉사 인근 상점 불매운동 벌인다" 엄포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 무료 급식소 '밥퍼'를 둘러싼 인근 주상복합 입주민과 운영 복지재단 간 갈등이 지역사회 문제로 커지고 있다.
2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성탄절인 지난 25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밥퍼 폐쇄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청량리 앞 밥퍼는 반드시 폐쇄되어야 한다"며 "우리 청량리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작성자는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인과 고령층 행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함께 올렸다.
논란이 일자 게시물은 금방 삭제됐지만, 오프라인에서의 갈등은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밥퍼는 1988년 답십리 굴다리에서 시작한 다일복지재단의 무료 급식소다. 이곳은 30여년간 노숙인과 취약계층에 음식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낙후됐던 청량리역 일대 재개발로 최근 이곳에 신축 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역 지형이 크게 변했고 이에 따라 급식소를 둘러싼 민원도 폭주하고 있다.
일부 주상복합 입주민들은 급식 시간대 노숙인이 단지 내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위생 문제를 일으킨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입주민 권모(50)씨는 "밥퍼에서 도시락을 받은 사람들이 아파트 벤치에서 술을 마시고 소변을 본다"며 "어린이집이 1층에 있는데 애들도 놀라고, 주민들이 경찰이랑 경비실에 신고하는 상황"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또 다른 주민(30)도 단지 내 깨진 술병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정은 안타깝지만 단지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 입주민 사이에선 펜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갈등은 집단행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부 주민은 밥퍼에 식자재를 기부하거나 봉사에 참여하는 인근 상점을 이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불매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밥퍼 측은 평일 위주 배식과 쓰레기 수거 등 자구책을 마련 중이지만, 200여명의 봉사 인력만으로는 노숙인의 돌발 행동이나 개인적인 음주까지 통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관할 동대문구와의 관계 설정도 또 다른 해결 과제다. 재단은 무허가 가건물 증축 문제로 구청과 행정소송을 벌여 2심까지 승소했는데, 이 때문에 구청이 과거와 달리 질서 유지에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밥퍼 측은 말했다. 경찰도 노상 방뇨 범칙금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 뜨는 뉴스
전문가들은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전문가는 "일부 급식 이용자의 좋지 않은 행동은 민원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면서도 "먼저 지역에 들어온 시설에 나중에 들어온 주상복합이 나가라고 할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장기적으로는 '길거리 배식'이라는 복지 모델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