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0원도 뚫린 환율 외환당국 비상
외환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 마련
금융기관 외화보유 의무도 완화
정부가 국내 외국자본 유출입 조정수단의 하나인 선물환포지션 규제를 일부 완화한다.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에 불합격한 금융회사에 대해 실시할 예정이던 감독 조치도 내년까지 한시 유예한다. 해외 투자 확대와 달러 선호 등 구조적 요인에 따른 국내 자금 유출 압력에 대응해 달러 유동성을 늘리기 위한 조치다. 외환당국은 거듭 환율 안정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마땅한 환율 방어책은 쥐고 있지 않은 만큼 추세를 되돌리긴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율은 정권 출범 전 정치적 불안이 극도로 확대됐던 계엄 직후 상황까지 밀렸다.
1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는 이 같은 내용의 외환건전성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라 내년 6월 말까지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의 감독상 조치가 한시적으로 유예된다. 금융기관들이 감독상 조치에 따른 부담을 우려해 외화유동성을 평상시 영업에 필요한 수준보다 과보유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각 금융기관은 일별로 외화자금 과부족을 평가해 외화자금 유입이 유출을 초과(순유입)하는 외화자금 잉여기간이 감독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유동성 확충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정여진 기재부 외화자금과장은 "은행 등 보수적인 국내 금융회사들은 만약의 돌발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감독당국 기준보다 외화를 훨씬 더 많이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걸 유예해 주는 게 이번 방안 중 시장에 달러가 풀리는 효과가 가장 클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외국계은행 국내법인(SC제일은행·한국씨티은행)에 대해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포지션 비율 규제를 75%에서 200%로 완화 적용하기로 했다. 선물환포지션 규제는 선물 외화자산에서 선물 외화부채를 뺀 금액이 은행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외국 본점으로부터 외화를 차입해 국내에서 운용하고 있는 외국계은행 국내법인의 경우도 그간 국내 은행과 동일한 75% 비율 규제를 받아왔다. 투기성 자금의 국내 유입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은 자본금, 외화차입 규모에 차이가 있어 훨씬 완화된 375%가 적용된다.
기재부는 "현재의 제도가 외국계은행 국내법인의 실질적인 영업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추가적인 외화유입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SC제일은행의 자본총계는 5조6340억원, 한국씨티은행은 5조5333억원이다. 이번 조치로 늘어난 선물환포지션 125%포인트를 곱하면 SC제일은행은 7조 425억원, 한국씨티은행은 6조9166억원이다. 총 14조원 정도, 약 95억달러다.
원화용도 외화대출 제한도 추가적으로 완화한다. 국내 기업이나 개인 등이 국내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외화를 빌려 원화로 바꿔쓰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있으나, 지난해 계엄 직후 수출기업에 대해 국내 시설자금 목적의 외화대출을 허용한 바 있다. 이번에는 국내 시설자금뿐만 아니라 국내 운전자금 목적의 원화용도 외화대출도 허용키로 한 것이다. 외국인이 별도의 국내 증권사 계좌개설 없이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을 바로 거래할 수 있도록 외국인 통합계좌의 활성화도 추진한다.
이 같은 대책에는 최근 원화 약세가 자본 유출, 대미투자 수요 확대 등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정부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수출기업과 서학개미 등의 달러선호와 해외투자 심리로 수급 쏠림이 심화하면서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1480원 턱밑에서 주간거래를 마쳤다. 이날 장중 한때 환율은 1482.10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뚫은 것은 계엄과 대통령 파면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대된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8개월 만이다. 정부가 보는 환율의 심리적 방어선은 정권 출범 전 계엄 국면에 형성된 1480원 선이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구두개입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지만 환율 추세를 역전시킬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당국은 지난 16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한화오션 등 국내 주력 수출기업들을 만나 환헤지 확대 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협력을 당부했지만 이날 환율은 약 한 달 만에 최고 수준(1477.0원)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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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 15일 달러 매도를 통한 전략적 환헤지를 최대 10% 단행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의 만료기한을 1년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자산에 대한 전략적 환헤지에 나서면 시장에 달러 매도 물량이 풀리면서 환율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지만 아직 전략적 환헤지 발동 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국민연금은 이날 한국은행과 650억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계약도 내년 말까지 1년 더 연장했다. 전날 오후 국민은행·한은 간 스와프가 일부 가동됐지만 시장 안정에 미치는 큰 효과는 없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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