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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트렌드2025]준비가 일상이 되는 '레디코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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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 급증, 시간 희소성 떠오르며
즉흥보다 계획이 생존전략 된 시대
운동·결혼·노후 등 전 분야 보편화
개인의 삶뿐 아닌 시장 바꿀 트렌드

[최지혜의 트렌드2025]준비가 일상이 되는 '레디코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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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P'도 계획하는 시대다. 원래라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MBTI 성격유형의 인식형(P)조차도 이제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맛집을 가려면 일주일, 한 달 전 예약이 필요하고, 페스티벌이나 공연은 치열한 티켓팅을 통해 일정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어디서나 예약이 요구되는 '예약경제'가 일상화된 것이다.

커리어 준비는 물론 결혼과 육아 같은 중요한 인생 이벤트도 예행 연습이 필요해졌다. 시간·감정·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욕구가 모두의 생존 본능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삶을 미리 계획하고 학습하며 살아보는 '레디코어(Ready-core)'가 부상한다. '준비된(Ready)' 상태가 삶의 '핵심(Core)'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레디코어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살펴보자.


요즘 대학생들의 노트북 화면에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오늘의 강의부터 주간·월간·연간 계획까지 칸칸이 정리되어 있고, 독서목록과 운동기록 같은 일상 데이터도 한곳에 모여 있다. 바로 생산성 앱 화면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했지만, 지금은 노션·투두이스트·크래프트 같은 생산성 앱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업무 효율화 도구였던 앱들이 이제 일상 전체를 계획하는 도구로 확장된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변화는 데이터로 확인된다. 노션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핵심 시장이 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노션 사용이 가장 활발한 상위 20개 대학 중 한국 대학이 6곳이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탓에 잘 만들어진 계획표들이 '인생비법서' 혹은 '인생치트키' 라 불리며 디지털 상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사전계획은 공부나 업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동에서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하루 1만 보 걷기', '매일 30분 러닝'처럼 그날의 목표만 채우면 됐다. 이제는 '3개월 뒤 10km 마라톤 완주'처럼 명확한 목표를 먼저 세운다. 목표일까지 남은 기간을 계산해 1주차 3㎞, 2주차 5㎞처럼 단계별 훈련 스케줄을 만든다. 운동이 즉흥적 활동이 아니라 장기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 것이다.


레디코어 트렌드는 '자산 형성'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세대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산 형성 방식을 체계적으로 학습한다. 2030세대에게 인기인 부동산 스터디가 대표적이다. 이 스터디는 이론 중심의 기초 강의부터 공인중개사를 직접 찾아가는 '부동산 임장'까지 포함한 실무형 커리큘럼으로 구성된다. 단순한 소규모 모임이 아니라 전문 플랫폼이 운영하는 교육 과정에 가깝다.


노후 자금 준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같은 장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며 은퇴 이후를 설계한다. 단기 수익을 중시하던 젊은 세대가 장기 상품에 몰리는 이유는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노후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인식이 퍼지며 '조기준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IRP 가입자의 2022년 대비 증가율은 20대가 201%로 가장 높았고, 이어 10대 140%, 30대 76% 순이었다.


인생의 주요 순간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다. 취업·결혼·육아·노후 같은 중요한 이벤트를 맞기 전에, 이를 실제와 가까운 방식으로 앞당겨 경험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 시장에서는 '면접 예행'이 새로운 준비법이 되었다. 예전처럼 취준생끼리 스터디 카페에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제는 AI 면접관과 함께 실전 같은 연습을 한다. 실제 설문에서도 20대 취준생 10명 중 7명이 취업 준비 과정에서 AI를 적극 활용한다고 답했다. 예컨대 챗GPT에 자기소개서를 업로드한 뒤 "자, 이제 너는 까다로운 면접관이야. 내 자소서를 읽고 날카로운 질문 5개만 짚어줘"라고 입력해 AI에 면접관 역할을 맡기는 방식이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예약 전에 먼저 경험해보는 '웨딩 컨설팅'이란 개념도 새롭게 등장했다. 전문가들이 예비 신부의 얼굴형과 체형에 맞는 드레스 넥라인·컬러·소재를 추천하고, 이를 실제로 미리 착용해보며 선택지를 좁혀가는 컨설팅 서비스다. 복잡한 선택을 미리 준비하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2030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결혼식 준비마저 또 준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결혼 예행을 보여준다.


레디코어의 확산은 단순한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가 만들어낸 구조적 대응이다. 선택지는 급증하고 시간은 희소해진 환경에서, 사람들은 실수를 줄이는 대신 '미리 준비한 사람'만이 좋은 경험과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음을 학습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획은 더 이상 몇몇 성향의 사람들만의 습관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소비·교육·금융·커리어·라이프 이벤트 전반에서 점차 더 정교한 준비 문화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시장은 사용자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 자체를 얼마나 지지하고 도와주는지에 따라 경쟁력이 갈릴 것이다. 준비가 곧 역량이고, 예측 가능성이 곧 안심이 되는 시대. 레디코어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소비시장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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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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