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환단고기 언급하며 동북아재단 질책
대통령실 "주장에 동의하거나 연구 지시 아냐"
진중권 "말 헛나왔다 사과할 일을 문제 키워"
이재명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말이 헛나왔다고 사과하면 될 터인데 (대통령실) 해명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는 25년 전 철 지난 유행인데 갑자기 왜 다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환단고기가 졸지에 역사학의 '문헌'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과 관련해 '환빠' 논쟁이 있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느냐"며 "고대 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잖느냐"라고 했다.
이에 박 이사장은 "소위 재야사학자들보다는 전문 연구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기에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질문 과정에서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는데, 박 이사장은 "역사는 사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희는 문헌 사료를 중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화는 이 대통령이 "결국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지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고민거리"라고 말하며 마무리됐다.
이 대화를 두고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김은혜 원내정책수석대표는 14일 "환단고기는 신앙의 영역이지 역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계에서 위서로 규정된 것"이라며 "대통령이 뭐든지 믿는 건 자유지만, 개인의 소신을 역사에 강요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이비 역사를 검증 가능한 역사로 주장할 때 대화는 불가능해진다"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같은 날 "무식한 권력자가 전문가와 국민을 가르치려 들 때 사고가 터진다"며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사태는 '논란이 아닌 것'을 '의미 있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 혼란을 일으킨 이 대통령의 무지와 경박함이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 말대로라면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는) 지구평평설' '(인류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달착륙 음모론' 같은 것들도 논란이 있으니 국가 기관이 의미 있게 다뤄줘야 하는 것이 된다"라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과거 환단고기 진서론자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여러 번 냈던 것을 보면, 실제로 환단고기 진서론을 믿는 것이거나 이 대통령 표현대로 본인이 '환빠'일 수도 있다"며 "대통령직은 설익은 자기 취향을 보이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14일 언론 공지를 통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 관련 다양한 문제의식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분명한 역사관 아래에서 국가의 역사관을 수립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 역할을 다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 대통령이 꺼낸 '환단고기' 논쟁을 사회적 퇴행의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나치가 아리아 인종 기원을 찾으려 고고학자들을 보냈고, 일제가 임나일본부를 찾으려 남의 나라 무덤을 파헤쳤지만 결국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며 "이 모두가 과학이 신화의 신하가 될 때 발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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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이 그저 대통령 개인의 단순한 실수나 교양의 결핍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뮈토스)에서 이성적 설명(로고스)으로 이행했지만, 최근 다시 로고스에서 뮈토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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