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탈리아 '카스텔로 포미노(Castello Pomino)'
1308년 설립된 伊 토스카나 와인 그룹
포미노, 고도가 빚어낸 우아한 화이트 명가
베네피지오, 이탈리아 최초의 오크 숙성 샤르도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자 중 하나로 꼽히는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는 감각을 통해 삶의 정수에 닿기를 바라는 탐미주의자(耽味主義者)다. 풍미와 미각의 즐거움, 이 감각이 선사하는 작은 기쁨이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래전 그들을 매혹한 토스카나(Toscana)는 아름다움(美)이자 선(善)이었고, 토스카나의 떼루아(Terroir)를 한 병의 와인에 담아내는 일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이자 선을 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와인 양조를 향한 그들의 열정이 수백 년째 변치 않고 이어지는 배경이다.
와인 한 잔에 담긴 700년의 미학
프레스코발디는 와인 생산 이전에 정치적·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귀족 가문이었다. 1000년경 당시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 도시들은 봉건 제도를 무너뜨리며 정치·경제·재정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귀족 가문들은 도시 밀집 지역이 제공하는 상업적·정치적 이점에 이끌려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도 이 무렵 키안티(Chianti) 지역의 발 디 페사(Val di Pesa)에서 피렌체(Florence)로 이주하며 역사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피렌체에 정착한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처음에는 옷감 사업으로 시작해 이후 금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프레스코발디는 1308년을 기점으로 와인 생산에도 돌입한다. 당시 와인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가문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자산이었고, 이들의 와인은 자연스레 귀족사회에 자리 잡게 된다. 당시 피렌체는 유럽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만큼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도나텔로(Donatello) 같은 예술가들은 물론 멀리 영국의 헨리 8세(Henry VIII)에게도 와인을 공급했다는 계약서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와이너리의 근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855년부터였다. 당시 가문의 지도자였던 비토리오 프레스코발디(Vittorio Frescobaldi)는 키안티 지역에 처음으로 프랑스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피노 누아(Pinot Noir), 샤르도네(Chardonnay) 등을 들여와 심었는데, 이는 훗날 '슈퍼 투스칸(Super Tuscan)'의 원형이 돼 이탈리아 와인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Leonardo Frescobaldi)가 가문을 이끌며 국제 품종과 현대적 양조법을 결합하는 실험이 본격화하게 된다. 동시에 다양성에 집중해 토스카나 각 지역의 떼루아를 반영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프레스코발디는 '테누타 카스틸리오니(Tenuta Castiglioni)', '테누타 카스텔지오콘도(Tenuta CastelGiocondo)', '카스텔로 니포짜노(Castello Nipozzano)', '레몰레(Remole)' 등 토스카나에 9개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고, 약 1200헥타르(ha)의 포도밭을 직접 관리·감독하며 일관성 있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우아함은 고도에서 온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품종이라고 할 수 있는 산지오베제(Sangiovese)를 중심으로 한 레드 와인의 존재감이 강렬해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위대한 레드 와인 틈바구니에서도 빛나는 화이트 와인은 있기 마련이다. '키안티의 심장에, 부르고뉴의 영혼을 심었다'는 평가를 받는 '카스텔로 포미노(Castello Pomino)'가 바로 주인공이다. 프레스코발디의 9개 와이너리 중 하나인 카스텔로 포미노는 '토스카나의 숨은 보석'으로 불리며 화이트 와인의 명가로 명확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와이너리가 위치한 포미노는 1500년대부터 프레스코발디 가문이 소유하기 시작한 영지로, 당시부터 뛰어난 입지 조건으로 유명했다. 포미노는 1716년 토스카나 대공국의 코시모 3세 데 메디치(Cosimo III de' Medici)가 키안티, 카르미냐노(Carmignano), 발 다르노 디 소프라(Val d'Arno di Sopra)와 함께 토스카나의 4대 귀족 와인 산지 중 하나로 공식 지정하기도 했다.
카스텔로 포미노는 "우아함은 고도에서 온다(Elegance comes from altitude)"는 슬로건으로 대표된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포미노의 떼루아와 양조 철학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표현이다. 피렌체에서 북동쪽으로 약 30㎞가량 떨어진 아펜니노(Appennino) 산맥 남쪽 사면에 자리 잡은 포미노의 포도밭은 키안티 지역의 평균고도(250~400m)보다 200m 이상 높은 7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같은 높은 고도는 포도가 낮에는 충분한 일조량에 노출되게 하고, 밤에는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당도는 과하지 않으면서 산도는 유지될 수 있게 돕는다. 또 높은 고도로 인해 15도(℃)가량의 일교차를 만드는데, 이는 포도가 산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익을 수 있도록 한다. 이같은 느린 성숙은 향의 복합성과 텍스처의 섬세함을 만들어 프레스코발디가 자랑하는 우아한 캐릭터의 와인으로 이어진다.
점토·석회질 기반의 알베레세(Alberese)와 이회토와 석회석으로 이뤄진 갈레스트로(Galestro) 토양 조합도 우아하고 미네랄리티가 뛰어난 와인이 생산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층부의 알베레세와 중층의 갈레스트로는 배수가 탁월하고 영양분이 제한적인데, 이는 포도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과즙이 농축되고 두꺼운 껍질의 포도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토양의 미네랄 구성과 배수력이 반영된 포도는 마시고 난 뒤 혀 옆에 짭조름한 미네랄 여운을 남기는 와인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베네피지오, 부르고뉴의 영혼이 깃든 토스카나의 걸작
'포미노 베네피지오 리제르바(Pomino Benefizio Riserva)'는 포미노의 고도가 만들어낸 정제된 우아함의 결정체다. 포미노는 토스카나에서 가장 먼저 샤르도네를 심은 와이너리인 동시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오크통에 숙성된 화이트 와인을 만든 와이너리인데, 두 가지 기록을 모두 품은 와인이 바로 베네피지오다. 1973년 첫 빈티지가 생산된 베네피지오는 샤르도네 100%로 만든 와인으로, 부르고뉴의 섬세한 터치와 토스카나 700년 양조기법의 완벽한 협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2023년 빈티지는 베네피지오 50주년 제품으로 맑고 정제되었으며, 포미노 지역의 전형적인 신선함을 담고 있는 와인이다. 외관은 황금빛 하이라이트가 돋보이는 화려한 밀짚 색을 자랑한다. 강렬하고 복합적인 향은 잘 익은 백도와 배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과일 향을 풍기며, 달콤한 향신료 향이 가미된 강렬한 스파이시함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또한 여운이 길고 구조감이 뛰어난데, 이 몽환적인 느낌은 마시는 내내 지속되며, 기분 좋고 깔끔한 뒷맛을 남긴다.
카스텔로 포미노의 얼굴은 베네피지오이지만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화이트 와인이라면 '빈 산토(Vin Santo)'를 꼽을 수 있다. 빈 산토는 전통적으로 부활절 기간에 포도를 압축하며, 수백 년간 이탈리아 성직자들이 미사에서 마신 와인이라는 뜻에서 이름의 의미도 '성스러운 와인'이다. 빈 산토는 포도를 3~6개월에 걸쳐 건조해 수분을 증발시키고 당분을 응축시킨다. 건조과정이 끝나면 포도를 으깬 다음 '마드레(Madre)'와 섞는다. 어머니를 뜻하는 마드레는 지난 배치(Batch)에서 남은 걸쭉한 잔여물이다. 그런 다음 밀봉한 소형 배럴에 넣고 머스트와 함께 '빈산타이아(Vinsantaia)'라고 불리는 일종의 따뜻한 다락방에서 수년간 천천히 발효시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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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미노 역시 오랜 건조와 숙성 과정을 거쳐 강렬하고 복합적인 풍미의 최상급 빈산토를 생산한다. 최신 빈티지인 '포미노 빈산토 2018(Pomono Vinsanto 2018)'는 트레비아노(Trebbiano)와 말바지아 비앙카(Malvasia Bianca Toscana), 산 콜롬바노(San Colombano)를 블렌딩해 만들었고, 7년간 숙성해 완성한다. 화려한 호박색의 와인은 잘 익은 과일 향부터 호두와 헤이즐넛, 육두구와 팔각의 스파이시함까지 다채로운 향이 특징이다. 입안에서는 산미와 달콤한 풍미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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