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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P 칼럼]트럼프의 시대, 미중 관계 '탈이념화' 이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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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 정치사상과의 수렴
양국 관계 리셋 위한 촉매제 될 수도

[SCMP 칼럼]트럼프의 시대, 미중 관계 '탈이념화' 이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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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 이론(Convergence theory)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서구의 오랜 환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이론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사회가 노동, 계급 구조, 가족 형태, 문화 등 사회 조직 측면에서 유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렴 이론은 사회 변화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각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역사적 맥락도 무시한다. 국가 간 권력 역학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선진국이 자신들의 가치와 제도를 개발도상국에 강제로 이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 점은 수렴 이론이 비서구 국가들이 '서구식 체제로 수렴한다'는 일방적인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중국이 경제적 도약을 거듭하면서 이런 수렴을 피했을 때, 서구는 이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대신 중국이 이에 수렴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가령 바이든 정부의 관료들은 베이징이 수렴에 실패했다는 논리로 대중국 강경책을 정당화했다.


서구 통념상 중국은 경제가 성장할수록 이미 정해진 경로를 따라 서구의 가치와 제도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없었다. 오히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 보여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에서 엿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도덕적 우월의식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후 최근 몇 달간 관측된 '역(逆)수렴' 현상에 대해선 아무도 준비가 안 돼 있는 듯하다. 지금은 초기 단계를 목격하는 수준이지만 그 윤곽은 이미 드러났다.


역전 현상은 미국이 중국에 가지는 소프트 파워를 상실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국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 전쟁과 평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란 측면에서 중국에 수렴하는 듯하다.


역수렴의 순간은 미·중 간 '대타협'의 촉매제가 돼 양국 관계를 안정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변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식의 혁명'에 기인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이념은 미국이 세계에서 타국에 자국의 이념을 강요하던 관습과 함께 소멸한다. 트럼프에게 기존 외교 채널을 통한 외교는 무용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극적 연출과 긴장감을 동반한 정상 간 외교다.


중국과 러시아는 트럼프의 변덕을 다루는 게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두 나라의 의사결정 방식이 트럼프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자신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자랑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거래까지 구상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간 휴전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국 문제를 다룰 때 그의 방식은 제한적인 효과만 냈다. 중국은 미국에 대적할 유일한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만해협의 안정 같은 가장 어려운 현안들을 돌파할 역사적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역수렴은 극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정책이 유명한 대반전, 즉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삼각 외교'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는 중국을 굴복시키겠다며 모스크바와 베이징 사이를 갈라놓는 방안을 꿈꾸는 수많은 대중국 강경파들로부터 지지받는 전략이다.


미국 국무장관인 마코 루비오는 대중 강경파로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행보는 1972년 닉슨의 베이징 방문을 연상시킨다. 당시 방중은 크렘린궁의 글로벌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베이징을 워싱턴 쪽으로 끌어당기며 국제 세력 균형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순전히 환상에 불과하다. 이는 중러 간 전략적 유대의 굳건한 토대를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1972년 닉슨의 방중 성과를 과대평가하는 일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국경 충돌로 인해 중국과 소련 간 분열은 수년간 진행됐던 터였다.


한편, 미국 정책의 실질적 변화는 거의 주목받지 못해왔다. 미국 외교 엘리트들은 트럼프의 '상식'이 중국식 정치적 정당성 개념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간과한 듯하다. 정치적 정당성은 권력 분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국민의 복지와 안보를 얼마나 잘 보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평화에 대한 시각에서도 어쩌면 미국은 중국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유교식 전통은 국가 운영에서 전쟁을 후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전쟁을 멈추는데 진지한 입장이라면 양국은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중국의 대미 정책을 이끄는 핵심 동인은 경쟁 자체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의 정치 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정권 교체를 추구한다는 의구심이다. 중국이 수립된 이후 이런 의구심은 늘 존재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이념 문제를 제거한 것은 양국 관계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올해 초, 중국은 백악관에 복귀한 트럼프가 지난 임기 때 멈춘 지점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데탕트(긴장 완화) 시도가 실패로 끝난 탓에, 베이징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2021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은 바이든 행정부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도덕적 우월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 정책 결정자들의 눈에 비친 바이든 팀은 트럼프 1기 때의 마이크 폼페이오나 매트 포팅거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다른 정치 체제의 불가피한 충돌을 신봉하는 이념주의자 그 자체로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루비오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매파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영향력이 줄어든 듯하다. 이는 미·중에 화해의 길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샹란신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IHEID)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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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Trump era could herald the end of ideology in US-China relations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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