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만수 가족, 끝까지 유지될 수 없어"
박찬욱 "'표면적 화목, 실상은 파멸 의도"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얼핏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실직했던 만수(이병헌)가 새 직장을 찾고, 가족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 연쇄살인마가 됐고, 아내와 아들도 이 사실을 안다.
이병헌은 "이 영화는 비극이다. 겉으로는 모든 일이 봉합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만수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살해하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며 "마지막에 가족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하는 장면도 표면적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영혼은 이미 죽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시커멓게 변해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런 가정이 과연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를 열린 결말로 매듭지었다. 그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가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했는지는 불분명하게 나타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셈인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라며 "만수는 새 직장에서 버티고, 아내와 아들에게 받아들여져야 다시 인생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서 끝난다"고 부연했다.
이어 "언뜻 보면 아내는 집을 팔지 않겠다며 축하하고, 아들은 앞마당에 (사람이 아닌) 돼지가 묻혔다고 믿지만, 그건 표면적인 인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영화에서 편집된 다른 버전도 귀띔했다. "원래는 만수가 명확하게 집을 떠나는 연기가 있었다"면서 "딸아이가 한 음씩만 내다가 완전한 연주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홀로 떠나가는 샷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춤을 추는 모습이 풀샷에 담기기도 했다. 원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 많은 일을 겪었고 끔찍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연기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율동은 허탈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병헌은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에 깊은 우울감이 자리하고 있었다"며 "성취에도 불구하고 드리워진 공허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장면이 빠졌어도 비극적 요소가 충분하다고 봤다. 대표적 예로는 인공지능(AI) 소등 시스템 장면을 꼽았다. 이병헌은 "만수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불이 꺼지는데, 언젠가 그 어둠이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보인다"며 "가까스로 AI 시스템 안에 들어갔지만 언제든 다시 추락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런 불길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AI 소등 시스템 장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결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 세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과 함께 살 수 있겠나? 자기 아들과 딸의 아버지로 용납할 수 있겠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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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열린 결말로 그린 이유에 대해선 "관객이 자기 가정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 사이가 어땠는지 등 자기 인생관에 맞춰 종합적으로 선택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겉보기에 행복한 결말에 안주하지 말고, 그 이면에 도사린 비극적 진실을 스스로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함의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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