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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 과정"[탈세계화? 新질서!]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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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인교 "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 과정"[탈세계화? 新질서!]③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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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역질서의 형성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화가 아닌 미국을 제외한 또 다른 세계화, 즉 재세계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의 한 회의실에서 만난 정인교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현재의 글로벌 무역질서에 대해 '재세계화' 형성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미국과 상대국의 자유무역질서는 약화했지만, 나머지 국가 간의 자유무역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작동해야만 하는 재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본부장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통상정책을 총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올해 1월부터 퇴임 전까진 초기 대미 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탈세계화가 자유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화, 즉 개방적 시대의 종언이라는 의미라면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과학기술과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개방적 시대가 끝날 순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무역질서와 나머지 국가들끼리의 무역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재세계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해 아쉬운 점은.

▲'일본 투자액(5500억달러)에 비해 한국이 3500억달러로 적으니 잘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2배 크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 2024년 한 해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한국이 660억달러, 일본이 685억달러로 비슷하지만 전년도 수치만 보면 안 된다. 미국 측이 이 수치를 가지고 '한국과 일본이 흑자 규모가 비슷하니까 투자도 비슷하게 해줘야지'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때 그렇게 우리 정부는 '1년 치가 아닌 지난 10년 치를 보자'고 미국을 설득했어야 했다. 최근 10년간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보면 한국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우리가 훨씬 불리한 결과다.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줬나.

▲한국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하게 된 실마리를 제공한 게 일본이다. 일본이 말이 안 되는 협상을 한 거다. 미국은 일본을 시범 케이스로 삼아 한국으로부터도 최대한의 어떤 양보를 받아냈다. 유럽연합(EU)은 60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몇 년 동안 EU 27개 국가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을 합해보면 6000억달러가 넘는다. EU는 미국산 에너지를 7500억달러어치 구매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어차피 사야 하는 물량이다. 한국과 일본만 헛발질한 것 같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관세협상 타결 전 한국 기업이 투자하기로 한 것도 포함되나.

▲한국 정부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줘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 기업들이 약속한 투자는 당연히 3500억달러에 포함돼야 한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3500억달러+알파를 투자하고 나면 이들 기업은 국내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진다.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생태계와 긴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탓에 국내 산업 공동화가 발생하면 대미 투자의 의미는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번 관세협상 타결, 투자가 한미 산업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이 제조업 재건을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삼성전자와 테슬라의 칩 공동 생산 계약은 의미가 크다. 또 다른 분야에서도 이 같은 협력이 늘어날 것이다. 다만 큰 틀에선 합의가 돼 있지만 구체화한 건 하나도 없다. 한국이 약속한 투자가 한미 산업협력으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구체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인교 "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 과정"[탈세계화? 新질서!]③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향후에도 지속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관세의 유용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미국도 이 기본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확실하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관세를 올렸지만, 기본적으로 10% 정도를 올렸으니 많이 올린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우선 시장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 나름대로 관세를 수출제품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자체 흡수하면서 대응해 왔다. 하지만 기업도 관세 비용 흡수 기간을 더 늘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까지 갈 것도 없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미 생산자물가에서 관세 영향이 이미 포착됐고, 소비자 가격도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국제 유가가 안정적이어서 미국 사람들이 가격 부담을 별로 못 느끼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덜 느낀다고 하는 데 기름값도 오르고, 관세 부담에 제품 가격이 오르거나 미국 내에서 생산한 비싼 물건이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하면 결국 미국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요소가 된다.


다만 미국은 대규모 감세를 시행하고 있고 이 세수 부족을 메울 관세 수입이 필요하다. 국가별로 차등해서 매기는 관세는 다른 문제고,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관세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 가능성은.

▲미국이 인구는 많지만 첨단산업에서 일할 인력이 충분치 않고 임금도 너무 비싸다. 기업 입장에선 미국 인력을 써서는 수지가 안 맞는다. 미국은 최근 '인공지능(AI) 실행계획'을 발표하는 등 AI와 로보틱스를 연계한 산업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제조업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로봇과 AI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업종이 들어 있다. AI와 로봇 등을 제조업에 순조롭게 매치할 수 있는 분야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과거의 제조 방식을 유지하는 분야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

정인교 "탈세계화 아닌 재세계화 과정"[탈세계화? 新질서!]③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강진형 기자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트럼프 라운드'를 언급하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종식을 시사했다.

▲미국이 처음에 관세를 매길 때는 펜타닐과 불법 이민 등 국가 안보 위기를 근거로 삼았다. 다음에 상호관세로 국가마다 관세율이 달라졌다. WTO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최혜국대우(MFN)인데 이게 깨져 버렸다. WTO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내국민대우(NT)도 위반되는 상황들이 상당히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WTO는 상소기구의 기능 정지 문제가 아니라 '미국은 WTO와 병립할 수 없다'는 상황을 미국이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어 대표는 미국의 통상 정책 수장으로서 이 부분을 국제사회에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향후 WTO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WTO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다. 그렇다고 미국을 WTO에서 쫓아낼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미국의 최근 조치들을 WTO가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사실 흡수할 방법이 없다. 미국의 관세 제도가 이대로 유지되면 WTO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다. WTO의 앞날이 상당히 암울해졌다. 다만 미국이 WTO에서 탈퇴하고 나면 중국이 WTO를 주도할 텐데 이건 또 미국 입장에서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은 미국이 자발적으로 WTO를 탈퇴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리스크(위험)가 있다.


-미국 때문에 EU와 브릭스 등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확대 논의가 활발하다.

▲EU가 올해 들어 CPTTP 가입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EU로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EU는 여러 가지 무역협정을 통해 남미 대부분의 국가와는 협정이 체결돼 있다. 아시아에서도 큰 나라와는 거의 다 돼 있지만, 미국의 극단적 자국 보호주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CPTPP 가입하거나 이를 통합해서 어떤 새로운 형태의 블록을 만들 가능성도 크다.


브릭스도 EU도 미국의 고관세 정책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을 거다. 미국에 맞대응 관세를 부과하긴 어렵지만, 제3국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무역 블록을 만듦으로써 미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조치에 자유무역 기조와 자유무역협정(FTA)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FTA가 흔들리게 됐는데 미국 말고는 이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대부분은 무역이 원활한 체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고, 이 때문에 일각에서 '미국 뺀 세계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머지 나라들은 어떻게든 무역자유화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는 수립·형성은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반작용으로서 무역자유화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각국이 당장은 미국 관세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나머지 국가 간의 무역자유화 논의가 활성화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브릭스가 일종의 정치적인 이벤트였다면 앞으론 협력체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갈 가능성이 높다.


-브릭스 등 새로운 경제공동체 또는 블록화에 대해 미국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브릭스 국가들이 상당 부분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미국 시장을 포기하며 브릭스 국가 간의 의미 있는 경제·무역 블록을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은 이들 국가를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몰아넣을 것이다. 미국은 협상을 통해 한두 나라만 빠져나가도록 노릴 거다. 미국이 브릭스 전체를 다 때리는 게 아니고 한두 나라는 빼내서 자기 편으로 만들면서 브릭스를 제어하려고 할 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중국이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추진한 이유는 단기간에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기업들이 많이 성장했지만, 정부의 보조금으로 생존하고 있는 기업들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이 탓에 중국이 보조금을 줄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려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미·중 갈등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 대신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한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미·중 갈등 또는 중국의 미국의 관세 부작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중국 기업이 한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부분도 있다. (중국기업과 경쟁할) 한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미국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나면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 국내 일자리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 크다. 이 부분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압박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새로운 무역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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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 시장과 미국과의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여러 형태의 비용을 줄여나가는 게 통상당국 및 한국 경제 당국의 책무다. 우리가 미국 시장 접근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중국이 차지했던 많은 미국 내 시장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분명히 있다. 단 국내 산업 생태계가 튼실해야 미국을 포함한 해외 진출이나 해외 투자의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대미 관계 못지않게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대담= 정재형 세종중부취재본부장·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정리=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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