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만 중 65세 이상 38.6%
병원 동행 등 돌봄 서비스 공백
군 "고독사 예방 정책 운영 중"
주민들 "실질 지원 없는 탁상행정"
군의회, 뒤늦게 '관련 조례안' 제정
사업예산 편성·전담인력 확보 시급
전남 해남군에 거주하던 80대 독거노인 A씨가 최근 자녀들이 있는 타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남편을 잃고 해남읍 작은 마을에서 홀로 지낸 A씨는 '눈칫밥 먹기 싫어' 자식 집 가기를 한사코 거절해왔지만, 거동 불편과 시력 저하로 병원조차 갈 수 없는 현실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A씨는 "주변을 보면 혼자 살던 노인들이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도 못 가보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나도 그렇게 고독사할까 봐 매일 밤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마을에 응급 상황이 생겨도 병원에 함께 가줄 사람이 없었다"며 "지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현실이 무서워 결국 해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7일 군에 따르면 해남군 인구(8월 31일 기준)는 6만2,480명이며, 이 중 65세 이상 인구가 2만4,108명으로 38.6%를 차지한다. 70세 이상 1인 노인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높은 대표적인 '초고령 지역'이다.
군은 고독사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군은 안부 확인 및 119응급 호출이 가능한 응급안전안심서비스와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은둔형 외톨이의 안부 확인을 위한 사랑의 1분 통화 등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인맞춤돌봄 생활관리사 205명이 맞춤돌봄 대상자 안전관리를 위해 폭염특보와 호우주의보 등 기상 악화 시 유선과 방문을 통해 일일 안전확인을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형식적으로 전화로만 확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실질적 지원책으로 보기 어렵다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실제 서비스 시행에 필요한 전담 인력이나 예산, 실질적 운영 주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서류상의 정책일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남읍 한 경로당 관계자는 "누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주민들도 모른다"며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고, 결국 어르신들이 스스로 가거나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군청만이 아니다. 해남군 내 일부 병원들은 "노인이 혼자 오면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진료가 곤란하다"며 보호자 동행을 사실상 요구한다. 가족이 없거나 도움받을 요양보호사가 없는 노인들은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계곡면에서 밭일을 하던 8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구급대가 출동했으나 발견이 늦어 이미 숨진 뒤였다. 무더위 속 열사병이 의심됐지만, 의료기관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80~90대 어르신 상당수가 홀로 살며, 이 중 일부는 심리적 불안과 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고 싶어도 보호자가 없어 포기하는 일이 잦다.
지난 3일 해남군의회 제346회 임시회에서는 '해남군 홀로 사는 노인 병원 동행 서비스 지원 조례안'이 의결됐다. 노인이 병원 진료 시 최대 1일 8시간까지 동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기우 군의원은 "조례 제정 이후 관련 예산 편성과 운영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며 "내년 중 본격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이나 광주처럼 민간 동행보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과 달리, 해남처럼 교통과 인력이 모두 열악한 지역은 지자체가 직접 서비스 운영을 하지 않으면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며 "돌봄 공백으로 고독사하는 노인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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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일수록 병원 동행 시스템의 공공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남군이 진정 독거노인들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면 조례 제정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즉시 예산을 편성하고 전담 인력을 확보해 실질적 서비스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남취재본부 이준경 기자 lejkg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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