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틀을 바꿔버린 기상변화
국가 인프라 자연재해 맞서 바뀌어야
나주석 정치부 차장
한낮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오래간만에 느끼는 청량한 아침 출근길에서, 기나긴 여름도 끝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관점에서 이전에 겪어오지 않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매년 겪어보지 못한 계절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사상 초유의' '기록적인'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기상환경은 올여름 내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우리들의 도시는 100년, 200년 만에 처음이라는 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 앞에 한계를 드러냈다. 수십 일째 이어지는 열대야 속에서 이제 에어컨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됐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수 없는 변화의 시간이 닥쳤다.
국회 등 정치권 안팎에서는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기후 적응형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종래의 하수도 체계에서는 괴물 폭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도시 등의 경우 홍수 상황에 대비해 대심도 빗물 터널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공원 녹지 등에 저류 기능을 대폭 강화해 도시를 '스펀지 도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대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과 같은 곳은 바다로 흘러나가는 지하수를 가둬 저장하는 일종의 '물그릇' 역할을 하는 지하댐이 추진된다. 분명한 것은 이제 도시는 폭우와 가뭄 위협 속에서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설치된 1973년 이후 가장 더웠던 올해 여름엔 폭염 위험성도 확인됐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관리체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올해 온열환자가 집계된 것만 4278명에 달한다.
애초에 도시는 자연재해와 외부 공격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이 자연을 이겨내면서 도시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바뀌는 듯했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다시금 도시는 자연재해라는 외부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져야 한다. 성벽이나 해자 대신에 폭우, 가뭄, 폭, 폭설, 슈퍼태풍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여야 한다.
인구 밀도 등이 낮다는 이유로 뒷전이었던 농어촌 역시 재해 방비 대책이 달라져야 한다. 올해 발생한 온열환자의 13.4%가 논밭과 비닐하우스에서 나왔다. 전체 인구의 3.9%도 채 안 되는 농업인구를 고려하면, 뙤약볕 아래 농민들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가 드러난다. 더욱이 올해 봄에 발생했던 영남권 일대의 대규모 산불처럼 농어촌 역시 재난 상황이 벌어지면 속수무책이다. 국가 인프라가 자연재해라는 위협에 맞서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거주 공간뿐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우리는 더위를 이겨내며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 무더위를 이겨내고 농사일을 하는 것도 미덕으로 여겼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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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무더위가 이어지겠지만, 어느덧 선물같이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다가오는 계절에는, 예측조차 안 되는 위기에 대비해 우리 삶의 공간과 살아가는 방식, 일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 숙제 검사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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