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어드와 잇단 API 공급 계약…이달만 1700억대
국내 대표 제약사 유한양행이 원료의약품(API) 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자회사 유한화학이 화성공장 증설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생산능력을 확보한 가운데, 모회사 유한양행은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와 잇따른 대규모 공급 계약을 성사시키며 국내 최대 API 수출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29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회사는 이달 들어서만 미국 소재 글로벌 제약사인 길리어드와 HCV(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 에이즈 치료제 API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각각 6129만5000달러(약 849억원), 6083만2800달러(약 842억원) 규모다. 올해 5월에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제 관련 6377만6350달러(약 883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유한양행의 누적 수주금은 2500억원을 돌파했다. 계약은 유한양행이 길리어드와 맺고 API CDMO(위탁개발생산) 자회사인 유한화학에 생산을 의뢰하는 형태다.
유한양행의 잇단 API 수주는 유한화학의 증설과 궤를 같이 한다. 유한화학은 지난 4월 경기도 화성공장 HB동 Bay 2 증설공사를 완료, 총 99만5000ℓ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HB동은 연속생산(Flow Chemistry) 설비와 데이터 무결성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친환경 생산과 글로벌 규제 대응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유한화학은 안산공장에 이어 화성공장까지 임상용 소량부터 상업용 대량 생산까지 원스톱으로 소화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했다. 회사는 여기에 29만2000ℓ 규모의 HC동 추가 증설도 추진 중으로, 2027년 하반기 완공 시 총 128만ℓ이상의 생산능력이 가능할 전망이다.
API 사업은 유한양행 캐시카우(현금창출)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누적 계약금액(2500억원)은 유한양행 지난해 매출(약 1조8590억원)의 약 13%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 제약사가 글로벌 빅파마와 단일 연도에 2000억 원 이상 API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례적이다. 생산을 맡는 유한화학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유한화학 매출은 2020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왔으며, 지난해 2122억원에서 올해는 2500억원(증권가 추정치)으로 20% 이상 뛰어오를 전망이다.
API 사업 순항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중국·인도에 집중된 API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약전위원회(USP)에 따르면 미국 내 처방약 API의 절반 이상이 인도와 유럽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제네릭 API의 35%는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과 관세 정책으로 인한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API는 완제의약품과 달리 관세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고마진 사업으로 꼽힌다. 특히 항바이러스제와 항암제 원료는 품질관리와 규제 대응이 까다로운 만큼, 한국 업체가 글로벌 빅파마의 공급처로 부각될 여지가 크다. 유한양행이 길리어드 외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로 API 공급 파트너십을 확대할 여지가 작지 않다는 전망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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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관계자는 "최근 증설한 유한화학 HB동이 풀 가동되고 있고, 글로벌 제약사들의 생산 문의가 이어지는 관계로 29만2000ℓ 캐파(생산능력)의 유한화학 HC동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며 "신약 API 사업은 수익성이 좋고 진입장벽도 높은 만큼 지속적인 고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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