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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각본·연출·주연'…한미 관세 협상 관전평[뉴욕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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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연출·주연 전부 트럼프'.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관람평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유럽연합(EU)의 협상도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됐다. 무역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을 등에 업고 관세 폭격을 퍼붓는 트럼프의 압박 전술 앞에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은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트럼프가 연출한 이른바 '관세 드라마'에서 각국은 미국이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조연에 그쳤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관세를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과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입장료(관세)'를 더 내고 들어오란 얘기다.


트럼프는 모범답안도 직접 제시했다. 일본의 5500억달러 대미 투자 사례를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도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출 수 있다(buy it down)"고 했다. 이후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와 관세 15% 적용을 맞바꿨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25%, EU에 30%의 고율 관세 부과를 일방 통보한 뒤, 대미 투자 확대 및 비관세 장벽 완화를 얻어내며 관세를 15%로 낮추는 동일한 전략을 취했다. 상대국 간의 견제 심리와 불안감까지 교묘히 활용한 전형적인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었다. 한국, 일본 협상단과의 백악관 기념 촬영은 트럼프가 관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까지 주연으로서 연출했음을 보여주는 화룡점정이었다.


'트럼프 각본·연출·주연'…한미 관세 협상 관전평[뉴욕다이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이후 양국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7.31 백악관 엑스(X) 계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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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트럼프가 설계한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한국 정부는 8월 상호관세 발효 직전 협상을 타결했다. 새 정부가 6월 초 출범해 협상 시한이 촉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먼저 합의를 이룬 일본·EU와 동일한 15%의 관세율을 확보, 경쟁국 대비 불리한 대우를 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 건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무역 합의 직후 성과를 홍보하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신중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모자를 특별 제작해 미국에 선물한 과정을 자료까지 배포해 알리고, 협상 주무부처 수장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성이면 감천" "트럼프가 허그까지 했다"는 표현으로 자축 분위기를 띄우기엔 후속 협상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안도하긴 어렵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유지돼 온 상호 무관세 체계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자동차 관세의 경우 일본은 2.5%에서 15%가 됐지만, 한국은 0%에서 15%로 올라 2.5%포인트의 상대적 우위가 사라졌다. 철강에는 여전히 5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는 다음 주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별도 품목 관세 발표도 예고했다. 이 같은 조건마저도 미국에 대한 3500억달러 투자와 맞바꾼 결과다. 정부는 약속한 투자 대부분이 보증 형식이라 실질적 부담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공식 합의문이 없는 만큼 이를 모호하게 넘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트럼프 시대엔 너무 위험한 접근이다. 트럼프가 각국의 투자는 "대출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향후 세부 협상에서 이견과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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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곳곳에서 터지는 무역 전쟁터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정부가 자축성 발언으로 협상 결과를 포장하기엔 트럼프 리스크는 여전히 크고,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더욱이 정부·여당은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 기업 부담을 가중하는 정책들을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 협상 첫 관문 통과에 들떠 기업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는 미국발 통상 전쟁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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