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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엄두도 못 내는 소금 채취…저녁에도 '소금땀' 줄줄[위기의 노동자]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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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해질 무렵 시작된 노동
염전 위 표면온도 35도
뜨거운 복사열에 정신 아득

"아따, 낮에 작업하면 게거품 물어요. 숨이 꽉 막혀요."


지난 29일 오후 6시30분 전북 부안군 곰소염전. 낮 최고기온은 35도를 기록했고 저녁에도 여전히 30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염전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낮 동안 소금이 햇빛을 잔뜩 머금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무장화, 토시, 장갑, 햇빛가리개로 중무장을 한 채 작업이 시작됐다. 온몸을 철저히 가린 채로 준비를 마쳤다.


낮엔 엄두도 못 내는 소금 채취…저녁에도 '소금땀' 줄줄[위기의 노동자]⑨ 본지 기자(왼쪽)가 지난 29일 전북 부안군 곰소염전에서 소금을 모으고 있다. 박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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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의 작업시간은 저녁이나 새벽이다. 한낮에 작업했다간 열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어서다. 15년째 일해 온 최모씨는 "날도 더운데 정말 욕보시네. 근데 언제 또 소금 채취해보겠느냐"며 "힘들면 쉬어도 되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염전은 1만5000평(약 4만9586㎡) 규모로 하루 5t가량의 천일염을 생산한다.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지만 한 발짝 딛자마자 뜨거운 수증기와 땅 위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실제 염전 위 표면 온도는 35도였다. 이를 몸으로 받으며 걷는 일은 말 그대로 불 위를 걷는 듯했다.


오후 7시 본격적인 채염 작업이 진행됐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염전 위로 길게 드리워졌고 소금 위로는 금빛이 번들거렸다. 뜨거운 기운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다. 염전 바닥에 엉겨 붙은 소금을 긁어내기 위해 쓰는 도구는 너비 180㎝짜리 '대파'와 50㎝짜리 '소파'였다. 최씨는 "이건 대파, 저건 소파요"라며 도구를 꺼내 들고 설명했다. 파다는 전라도 사투리로 긁는다는 뜻이다. 기자는 야심 차게 대파를 손에 쥐고 염전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낮엔 엄두도 못 내는 소금 채취…저녁에도 '소금땀' 줄줄[위기의 노동자]⑨ 본지 기자가 지난 29일 전북 부안군 곰소염전에서 채염 작업을 하고 있다. 박승욱 기자

소금물을 밀자마자 어깨에 무게가 실리고 팔이 저릿했다. 간수를 머금은 소금은 실제 무게보다 2~3배 무겁게 느껴졌다. 대파 끝에서 밀려 나간 소금은 양옆으로 쏟아지듯 흘러나갔고 바닥엔 홍해 갈라지듯 넓게 긁은 자국이 남았다. 그러나 이 소금은 다시 모아야 했다. 작업자들은 "소금이 덜 빠져나가게 밀어야 한다"며 "힘으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분 정도 작업하다 보니 체온이 더욱 올랐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더는 햇빛가리개를 쓸 수 없었다. 소금 위로 반사된 햇빛은 저녁 시간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위는 태양, 아래는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열에 정신이 아득했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모자와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러나 대파에서 손이 계속 미끄러지는 탓에 장갑을 다시 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에도 공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태양은 지고 있었지만, 염전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발밑에 깔린 흰 결정들이 열기를 머금은 채 자신만의 해처럼 빛났다. 작업을 시작한 지 40분이 지나자 다리가 후들거렸고, 1시간쯤 되자 손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손이 따가워 살펴보니 물집이 잡혀있었다. 기자가 두 개의 판에서 모은 소금의 양은 약 1.2t이었다.


낮엔 엄두도 못 내는 소금 채취…저녁에도 '소금땀' 줄줄[위기의 노동자]⑨ 염전 작업자가 지난 29일 전북 부안군 곰소염전에서 채염 작업을 하고 있다. 박승욱 기자

오후 8시30분 수레를 이용해 긁어모은 소금을 옮기는 작업이 이어졌다. 일곱개의 판에 모아놓은 소금을 채렴 기계로 4명이 다 같이 밀어 넣었다. 작업자들은 "지금은 자동화 기계가 있지만, 과거엔 다 삽으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수레는 10개, 약 5t에 달하는 소금이 채취됐다. 소금이 실린 수레는 다시 레일을 따라 옮겨야 했다.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다리엔 힘이 풀리고 등줄기엔 땀이 흘렀다. 온몸을 써야만 수레가 겨우 한 뼘 움직였다. 한두 번 밀다 보면 장화는 염수에 흠뻑 젖었다. 중심을 잃을 때마다 물에 발이 빠졌고, 허리 통증이 밀려왔다.


오후 9시30분 수레를 옮긴 뒤 돌아서는데 염전 너머로 밤하늘이 펼쳐졌다. 염전의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 다시 대파를 잡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품질 좋은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염전 판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소금물을 밀어내고서야 염전의 하루가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땀에 젖은 옷은 이미 굳어버린 소금기와 뒤섞여 있었다. 온몸에 밴 짠 냄새와 끈적임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뜨거웠던 열기와 무거웠던 수레, 그리고 쉴 틈 없이 이어진 노동의 흔적이었다.


낮엔 엄두도 못 내는 소금 채취…저녁에도 '소금땀' 줄줄[위기의 노동자]⑨ 본지 기자가 지난 29일 전북 부안군 곰소염전에서 채취한 소금을 들고 있다. 박승욱 기자

샤워기에서 물이 튀는 순간 온몸이 따끔거렸다. 온종일 햇빛과 소금, 땀에 찌들었던 피부가 그간의 고단함을 말해줬다. 기자는 비로소 '소금 채취는 인생이랑 비슷해요. 세상에 쉬운 것이 없어요'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염전 노동은 단순히 소금을 생산하는 일 이상이었다. 자연의 강렬한 힘과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태양과 열기, 그리고 바람과 소금과의 치열한 균형 속에서 노동자들은 묵묵히 하루를 견뎌냈다. 태양을 피해 진행된 야간작업이지만 이곳에서의 밤은 선선하지 않았다. 노동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는 시간이었다.


최씨는 "양질의 소금을 만들려면 바람, 햇빛이 다 맞아야 한다"며 "우리가 만든 소금 하나하나에 삶과 땀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노동자의 땀, 인내, 자연과의 끈질긴 싸움이 녹아든 결정체였다.



오후 10시를 넘겨서야 염전의 불빛은 서서히 꺼지고 어둠이 공간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도 내일의 노동은 이미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태양은 물러갔지만, 노동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드리웠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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