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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리포트] 기차 보러 갔다가 법정에 선 재윤씨의 마지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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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지적장애인의 마지막 서울역
재윤씨 떠난 뒤에야 움직인 제도
발달장애전담검사 배당
장애인 공소장 표지 표기 추진
법정의 장애인감수성 부족 해결해야

편집자주형사사건 피고인 10명 중 4명이 국선(國選)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국선 변호는 주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하기 힘든 피의자·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변호인 조력권)를 보장하려고 만든 제도다. 그런 만큼 '국선 변호 스토리'에는 우리 사회의 환부와 사각지대가 많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아시아경제의 다섯 번째 리포트는 별이 된 재윤씨와 손영현 변호사의 사례다.
[국선변호리포트] 기차 보러 갔다가 법정에 선 재윤씨의 마지막 해 2023년 9월 27일 아침. KTX 서울역 2층 대합실 5번 승강장 입구 앞. 재윤씨가 경찰에 둘러싸여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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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7일 아침. KTX 서울역 2층 대합실 5번 승강장 입구 앞. 한 남자가 형광조끼를 입은 경찰 6명에게 둘러싸였다. 이 남자는 집회 경비를 하러 나온 기동대원들을 향해 사진을 찍고 혀를 내밀다가 포위된 것이다.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던 9시 29분께. '퉤!'


남자가 방범모를 쓴 한 순경의 뺨에 침을 뱉었다. 경찰관 6명이 남자의 목덜미를 압박하고 등 뒤로 팔을 꺾어 그를 제압했다. 10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뒤를 돌아 또 한번 침을 뱉었다. 경찰들이 그를 넘어뜨렸다. 그에게 미란다원칙을 고지했다. 소란은 마무리됐다. '4분' 만에 상황이 끝났다.


지적장애 1급 발달장애인 이재윤씨(38세)가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연이다. 경찰은 재윤씨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재판에 넘겼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국선 전담 변호인이었던 손영현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손 변호사는 재윤씨의 동기와 행적에 주목했다. 수사기관은 '장애인'인 재윤씨가 이날 서울역에서 있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참석자로, 경찰관들에게 항의하기 위해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


재윤씨의 말은 달랐다. '기차 애호가'였던 재윤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열차를 구경하러 서울역에 오는 취미가 있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재윤씨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기차를 보러 서울역사에 들렀다. 마침 장애인 집회가 서울역에 있었다. 도열한 경찰관들이 기차 구경을 막자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재윤씨는 이날 피의자 신문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보고 싶어서 1층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경찰관들이 막고 있어서 (기차) 사진을 찍었어요"라고 진술했다. 재윤씨는 5세 때 장애인집단시설에 맡겨졌는데, 그전까지 삼촌과 기차 여행을 갔던 추억이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한 달에 4~5회 열차표를 예매해 익산이나 강릉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국선변호리포트] 기차 보러 갔다가 법정에 선 재윤씨의 마지막 해 지난 2023년 9월 27일 작성된 이재윤씨의 피의자신문조서 내용 중 일부. '집회 참석 목적이 아니라 기차를 구경하기 위해 역에 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부분은 추후 공판에 반영돼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했다.

손 변호사는 재윤씨 재판에서 세 가지를 파고들었다. ①재윤씨는 집회 참여자가 아니다.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러므로 '고의'는 없었다. ②1급 지적장애(IQ 20~34)인 재윤씨에게 이 사건 죄를 물을 수 있는지 국민 법감정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③발달장애인 교육을 받은 전담 사법검찰관 및 검사가 재윤씨를 조사하지 않았다.


손 변호사는 또 재윤씨의 지적 수준이 1~3세 정도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디즈니 공주 드레스를 입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제 딸을 공무집행방해로 의율할 수 없는 것처럼 피고인도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보고 죄를 묻기 어렵다"고 변론했다. 검찰은 ①을 받아들여, 지난해 6월20일 재윤씨가 '집회에 참가 중이었다'는 문구를 삭제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재윤씨 사건 판결문에도 이 대목은 빠졌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난해 8월 재윤씨에게 벌금 300만원 실형의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공무집행방해의 고의가 있었음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재윤씨는 항소를 준비하다가 지난해 12월 1일 돌연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폐렴과 당뇨였다.


손 변호사는 재윤씨의 사망 이후 '발달장애인 전담 검사의 실효성'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발달장애인 전담 검사가 재윤씨 사건 조사를 맡았다면 다른 결론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은 인권위로부터 '발달장애인 사건은 발달장애인 전문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대검찰청은 올해 4월부터 모든 발달장애인 사건의 송치와 불송치 기록 표지에 발달장애인 사건임을 표기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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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변호사는 "고(故) 이재윤씨는 5세경 시설에 입소해 30년 가까이 시설에 살다가, 34살 무렵 '탈시설'을 하게 된 직후 이런 사건을 겪다가 돌아가신 것"이라면서 "재윤씨와 같은 분들이 방어권을 지키지 못해 형사사법 정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국선변호리포트] 기차 보러 갔다가 법정에 선 재윤씨의 마지막 해 지난해 12월 1일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마련한 故이재윤씨의 분향소. [사진=김포센터 제공]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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