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쏟아지는 택배상자에 숨이 턱턱…빠른 배송의 이면[위기의 노동자]⑤

시계아이콘01분 5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에어컨 없이 대형 선풍기에 의존
30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
퇴근 전까지 멈출 수 없는 노동

"오늘 날씨 역대급인데 진짜 큰일이다."


쏟아지는 택배상자에 숨이 턱턱…빠른 배송의 이면[위기의 노동자]⑤ 물류 센터에서 일하는 모습. 최영찬 기자
AD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의 한 물류 캠프. 헬퍼 사무실에서는 폭염을 걱정하는 말들이 새어 나왔다. 벽에는 "포도당과 물을 충분히 섭취하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혹서기 키트라는 이름의 쿨팩과 이온 음료가 신규 헬퍼들에게 제공됐다. 키트는 무더위를 막아줄 방어선이다.


기자도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안전화를 신은 뒤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카키색 조끼를 입은 관리자는 "어제도 탈수 증세로 쓰러진 분이 있었다"며 "물 꼭 많이 섭취하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전 10시 스트레칭과 안전교육이 끝나자 곧바로 배정이 이뤄졌다. 처음엔 소분 업무였지만 관리자가 이름을 부르더니 '하차'로 가라고 했다. 물품 하역 업무다.


쏟아지는 택배상자에 숨이 턱턱…빠른 배송의 이면[위기의 노동자]⑤ 기자가 직접 하역 노동을 한 경기도 고양의 한 물류센터 전경. 최영찬 기자

듣던 대로 고된 일의 대명사 같았다.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는 팔레트 더미 위의 택배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올려야 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았고 무거운 쌀 포대, 흙, 음료 묶음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신선식품이 담긴 프레시백도 있었다. 팔레트를 하나 비우면 곧바로 새 팔레트가 들이닥쳐 쉴 틈이 없었다. 몸을 굽히고 들고 올리는 동작이 반복되면서 등줄기 아래로 식은땀이 흘렀다. 숨은 턱에 차올랐다.


일 시작 30분이 지나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1시간쯤 됐을 땐 팔과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서 "잠시만요"라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함께 일하던 분은 "지난해 '하차'일을 하다가 한 달 만에 10㎏ 빠졌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힘 빠진 팔로 물건을 들어 올릴 때면 팔꿈치가 덜덜 떨렸다. '이젠 못하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옆에선 누군가 "아직 4시간 남았다"는 말을 툭 던졌다. 그 한마디에 팔이 더 무거워졌다.


작업장에는 대형 선풍기와 천장 팬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컨은 없어 열기가 덮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아귀는 저리고, 발바닥까지 끈적끈적해졌다. 작업복 안에 고여 있던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쏟아지는 택배상자에 숨이 턱턱…빠른 배송의 이면[위기의 노동자]⑤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의 한 물류센터에서 헬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영찬 기자

오전 11시40분이 되자 휴식이 주어졌다. 총 5시간 근무 중 유일하게 주어진 30분이었다. 헬퍼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다. 짧은 휴식 후 헬퍼들은 다시 줄지어 작업장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인 오후 3시까지는 공식적인 휴게 시간 없이 일해야 했다. 작업 중간에 물을 마시러 갈 수는 있지만 누구도 맘먹고 쉬기는 힘들었다. 목이 말라 자리를 비워도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자리에 복귀했다. 회계사 시험을 마치고 잠깐 용돈을 벌러 왔다는 김모씨(27)는 "예전에도 알바를 했지만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라며 "점심시간도 없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오후 2시55분 퇴근까지 5분이 남았지만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작업장 스피커에서 "롤테이너(RT) 세팅해 주세요"라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RT는 물류센터에서 택배를 쌓는 이동식 철제 선반이다. 소분 담당자들이 분류된 상자를 RT에 옮기고, 가득 차면 트럭 앞으로 이동시킨다. 퇴근 직전까지 물량은 끊이지 않았다. 그 순간 몇몇 헬퍼들의 어깨가 처졌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찍고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연장 근무를 하지 않는 헬퍼들이 퇴근했다. 기자도 땀에 젖은 옷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온종일 혼자서 처리한 팔레트는 14개였다. 더위에 지친 얼굴, 지끈거리는 머리, 허리와 팔엔 노동의 무게감이 남았다.


쏟아지는 택배상자에 숨이 턱턱…빠른 배송의 이면[위기의 노동자]⑤ 지난 10일 경기도 여주의 한 물류센터 작업장 온도가 32.9도를 기록했다. 해당 물류센터 노조

업체는 전국 물류센터에 냉방 설비를 확충 중이라고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느낀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이 업체의 온도 기록장에 따르면 지난 10일 여주센터 작업장은 최고 기온이 32.9도로 집계됐다. 같은 날 동탄센터는 오전 10시30분 기준 33.4도까지 치솟았다고 노조 측은 밝혔다.



택배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배송을 늦출 수 없다고 할수록 결과적으로 헬퍼들의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 소비자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편하게 주문하지만, 노동자들의 땀의 결과로 편안함을 즐기는 것이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이들의 휴식권도 그 편리함과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