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
TNR예산 194억→260억원 증가
포획 다음날 중성화…회복 후 방사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촌. 승용차 아래에 있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포획틀 안에 있던 먹이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담장 너머에서 이를 지켜보던 길고양이 포획자 조우람씨(45)는 고양이가 포획틀 안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어느새 고양이가 포획틀 안에 깊숙이 들어와 먹이를 먹기 시작하자 조씨는 원격으로 포획틀 입구를 닫았다. 두시간 반의 기다림 끝에 고양이 한 마리를 잡은 것이다.
깜짝 놀란 고양이가 포획틀 안에서 이리저리 날뛰자 조씨는 서둘러 포획틀 입구 쪽에 포획틀보다 작은 이동장을 마주 댔다. 이후 포획틀과 이동장의 문을 열어 고양이를 이동장으로 이동시키고 이동장을 덮개로 덮었다. 조씨는 "고양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잡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데다 탈출하려고 포획틀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다칠 수도 있다"며 "고양이가 다치지 않도록 보다 작은 이동장에 옮겨놓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덮개를 덮어 주변을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
조씨가 길고양이를 포획한 것은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 위해서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은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해 이들이 각자 영역 침범 없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돕고, 인간과도 공존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에 따라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접수되면 포획자는 해당 지역에서 잡은 길고양이를 연계 동물병원에 인계하고,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친 뒤 길고양이를 제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22일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중성화한 길고양이는 지난해 12만9980마리로 2022년 6만1673마리, 2023년 9만9032마리에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 8일까지 총 6만8739마리가 중성화됐다. 이에 따라 사업 예산 역시 2022년 194억원, 2023년 227억원, 지난해 26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런 실적과는 별개로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잡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날 조씨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여러 종류의 먹이를 사용했으며, 고양이 장난감도 활용했다. 조씨는 "고양이를 유인하기 위해 고양이 취향에 맞는 먹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생선맛, 닭고기맛, 참치맛 등 15가지 가지고 다니고 장난감이나 레이저 포인터 같은 걸로도 관심을 끌려고 한다"면서도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예민한 생물이라 포획틀로 유인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직접 고양이를 맨손으로 잡거나 마취총을 사용할 수도 없다. 반응속도가 빠른 고양이가 잡히지도 않고, 마취총을 사용했다가 크기가 작은 고양이가 자칫 눈을 맞아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포획틀을 이리저리 두면서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많은 길고양이 중에 중성화가 필요한 고양이를 선별하기도 어려운 작업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는 고양이 특성 탓에 고양이가 움직이는 곳 주변에 몰래 포획틀이 두고 멀찍이서 이들을 지켜봐야만 한다. 이때 고양이가 포획틀 주변을 어슬렁거리면 조씨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서 화면을 확대한 상태로 고양이의 상태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고양이들을 보면 상처를 입은 아이들도 있고 임신을 하거나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수유 중인 아이들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중성화를 한 아이들도 있다"며 "다양한 고양이들 사이에서 중성화 대상인 고양이만 걸러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공치는 날도 많다. 조씨는 "고양이 한 마리 잡는 데 10시간까지 기다려본 적도 있다"며 "사실상 고양이를 잡는 날보다 잡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실제로 기자 역시 조씨를 따라 지난 5월 송파구 가락동 일대에서 네시간 동안 길고양이 포획에 나섰지만 네마리를 발견하고도 포획에는 실패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잡힌 길고양이는 바로 연계 동물병원을 보내진 뒤 다음 날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수술대에 올라간다. 수술을 앞두고 찾은 병원에서는 전날 잡은 고양이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고양이는 3.6kg이었고 수컷이었다. 무게에 따라 마취약 용량이 달라진다. 수의사 이영국 원장(63)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도 마취약을 많이 투여하면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적은 양을 넣으려고 한다"며 "마취약 용량을 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몸무게이며, 사람의 손을 타서 얌전한 아이들은 같은 무게의 다른 고양이보다 마취약을 10% 적게 넣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 고양이가 완전히 마취되자 이 원장은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패드를 깐 수술대에 고양이를 눕힌 후 수술 부위의 털을 밀고 소독약을 바르자 주변에서 알코올 냄새가 가득했다. 수술을 마치면 곧바로 왼쪽 귀 끝부분을 잘라내야 한다. 동물보호법에는 중성화 수술을 받은 개체임을 구분하기 위해 수술 후 왼쪽 귀 끝부분 약 1cm를 잘라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수컷은 24시간, 암컷은 72시간 입원 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다만 중성화 수술 시 감염 예방이나 치료 조치는 개인의 몫이다. 사업 예산에는 중성화 수술 및 수술로 인한 입원 비용과 광견병예방접종 비용만 포함돼 있어서다. 이 원장은 수술받은 고양이에게 따로 구비해둔 심장사상충 약을 주입했다. 그는 "사실상 병원에 올 일이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사비를 들여 중성화 수술 외의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며 "수의사로서 이상이 있거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비용을 병원이나 캣맘들이 분담해서 내는데, 중성화 관련 예산에 기본적인 치료 조치에 대한 부분도 담긴다면 고양이가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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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길고양이의 경우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중성화를 위해 데려오면서 어느 정도 감염 예방이나 치료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면서도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는 중성화 수술을 지원할 예산 자체가 부족한 곳이 많기 때문에 전반적인 수술 예산을 확보한 뒤 이후 추가적인 진료 지원 등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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