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복서 출신 우파 후보 당선
폭력성 가미된 강인함 앞세워
'강한 지도자=강한 국가'는 오해
최근 폴란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민족주의 우파 성향의 야권 후보인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42)가 당선되자 진보 진영은 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즉각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공직에 재직한 적이 없으며 50.9%로 상대 후보(득표율 49.1%)를 간신히 제치고 당선됐다. 그러나 나브로츠키는 많은 민족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최우선시하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바로 폭력성이 가미된 육체적 강인함에 대한 선호다.
전직 복서 출신의 그는 지금도 링에서 스파링하는 걸 즐긴다. 열렬한 축구 팬이기도 해 '첼시'와 폴란드 '레히아 그단스크' 팀 로고를 가슴에 문신으로 새겼을 정도다. 2009년에는 70대70으로 라이벌 팀 팬들과 패싸움을 벌였다고 선거운동 중 털어놓기도 했다. 다만 호텔 경비로 일하던 시절 포주를 겸직했다는 의혹이나 폴란드 범죄조직과 연계됐다는 의혹에 대해선 부인했다. 막판 열세를 뒤집는 데 성공한 선거 캠페인에는 복싱과 사격장 영상, '폴란드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공약이 포함됐다.
폭력성이 가미된 육체적 강인함을 강조하는 것은 민족주의 성향 우파 진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는 단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푸틴은 사냥과 사격, 낚시, 얼음물 다이빙 등 남성성을 과시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상반신을 탈의한 채 근육질 팔뚝과 가슴을 드러낸다. 여성 기자를 위협한 것으로 알려진 시베리아 호랑이를 기절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시아 동맹국의 '미니 푸틴'들도 이와 비슷하게 마초 스타일을 추구한다.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과 '건강한 농부' 이미지를 앞세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모두 자신을 남성적인 리더로 포장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대통령의 경우 가슴둘레가 56인치에 달한다고 자랑하며 유년 시절 악어 서식지에서 수영을 즐겼다고 주장해왔다. 중국 관영 언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거 문화대혁명 시절 100kg에 달하는 밀 자루를 한쪽 어깨에 진 채 자세를 바꾸지 않고 5km 넘게 걸어가곤 했다고 주장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스탄불의 한 신축 경기장 개장식에서 직접 경기에 출전해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이 모든 장면이 TV에서 생중계되도록 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물이다. 실제로 '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힘과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을 즐기며 집권 초부터 워싱턴DC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겠다는 구상을 꾸준히 밀어붙였다. 특히 푸틴 대통령에 대한 그의 집착은 수많은 음모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가장 단순한 해석을 보면, 푸틴은 트럼프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자질을 가장 잘 체현한 인물이다. 트럼프는 같은 이유로 다른 마초 권위주의자 지도자들에게도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술탄'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자국에서 자기 뜻을 관철하는 능력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경호원들이 리무진과 함께 달리는 모습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파 진영에서 '육체적 강인함'을 숭배하는 것은 단순한 이미지 전략이 아니다. 이는 훨씬 더 포괄적인 정치적 주장에 대한 은유다. 이들에게 자유주의는 '유약함'의 동의어이며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규칙과 합의에 지나치게 집착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과도한 배려는 결국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논리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일수록 세상에는 쓸데없는 절차를 걷어내고 전통을 지켜낼 수 있는 강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인함에 대한 숭배는 특히 젊은 남성층 사이에서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가 확산하는 배경을 설명해준다. 실제로 트럼프는 18~29세 남성 유권자에게서 14%포인트 차이로 상대를 앞섰으며, 반대로 카멀라 해리스는 같은 연령대 여성 유권자에게서 18%포인트 격차로 우세했다. 영국 개혁당,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역시 젊은 남성 유권자 사이에서 강세를 보인다. 이런 흐름은 정치적 마비 상태에 염증을 느낀 일반 유권자들이 우파에 끌리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전 세계 우파 정당들은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관료집단과 난민 수용을 어렵게 만드는 인권 변호사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대중의 분노를 결집시킨다.
이 같은 집착은 우파의 통치 방식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국민주의 성향의 우파 정당들은 권력을 잡는 곳마다 독립 기관을 약화시키고 권력을 행정부로 집중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서구 국가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 체계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그는 지지자들 앞에서 "나는 대통령으로서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면서 '조국을 구하는 자는 법을 어기지 않는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약하고, 권위주의는 강하다'는 도식은 심각한 오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질서는 내부의 합의 형성과 외부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라는 이중 전략으로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섰다. 권위주의 체제는 내부 분열과 구조적 취약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강한 남성 지도자 중심의 정권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체제다.
이런 오해는 폴란드에서 단기간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착각이다. 폴란드는 중도 성향 정부 아래 안정적인 강국 모델을 유지해왔다. 연평균 4%라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른바 '강한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맞을 경우 역설적으로 이는 국가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글로벌 비즈니스 칼럼니스트, 전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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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Why Are Today's Strongmen So Obsessed With Muscle?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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