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 기업 늘었지만 '제 살 깎기' 심화
지정기업 대비 자유수임 감사보수 낮아
“감사시간 줄고 일부 항목 생략”
중소형 법인 고사 우려도 커져
대형 회계법인들의 감사보수가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2025사업연도) 자유수임 시장에 풀린 상장사 수주를 놓고 대형 회계법인 간 출혈 경쟁이 심화하면서다. 이 여파로 감사 품질 저하, 중소형 회계법인 고사 가능성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4 회계법인이 수임한 자유선임 대상 상장사 수는 전년보다 증가했다. 삼일은 183개사로 전년(164개) 대비 12%(19개) 증가하며 1위를 차지했고, 삼정이 같은 기간 173개에서 175개로 소폭 늘며 뒤를 이었다. 한영은 125개에서 152개로, 안진은 45개에서 66개로 늘어나며 선전했다.
상장사 등 기업들은 2019년 도입된 지정감사제에 따라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한 뒤 다음 3년 동안은 금융당국이 지정해주는 감사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지정감사 대상 상장사 수가 감소하며 자유수임 시장은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자유수임 대상 상장사 비중은 64.1%로, 2019년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최상위군에 속하는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기업 30여곳이 자유수임 시장에 쏟아져 나오며 빅4 간 경쟁이 과열된 바 있다.
업계 1위도 '덤핑' 가세
치열한 수주전에 빅4의 상장사 감사보수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영은 2023년(실제 지급금액 기준) 평균 3억8300만원에서 지난해(계약금액 기준) 평균 3억4700만원으로 9.4% 낮춰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업계 1위 삼일도 같은 기간 3억9300만원에서 3억7900만원으로 3.6% 낮추며 저가 공세에 뛰어들었다. 안진과 삼정도 각각 -2.8%, -2.0%로 일제히 하락했다. 안진을 제외한 삼일·삼정·한영의 상장사 감사보수는 최근 5년 중 최저치로 나타났다.
특히 자유수임 기업에 책정된 보수는 지정 기업과 비교해 확연히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영은 4억원(지정 7억4800만원·자유수임 3억4700만원) 이상 벌어졌고 삼정 5300만원, 삼일 1200만원, 안진 1100만원 순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감사인의 책임은 동일한데 자유수임 기업과 지정 기업 간 감사보수 격차가 지나치다"며 "보수 책정 기준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감사 인력, 시간 줄어" 우려
업계에서는 지나친 가격 경쟁에 따라 감사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감사보수 인하가 감사 투입 시간과 인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상장사 관계자는 "감사보수를 줄인 만큼 현장에 오는 회계사 수와 감사 시간이 줄어든다"며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한 항목은 아예 감사를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지금 뜨는 뉴스
저가 수임 경쟁이 심화하면서 중소형 회계법인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빅4가 최근 매출 증가율 둔화를 만회하고자 감사보수를 공격적으로 낮추는 추세"라며 "일부는 중소형 회계법인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해 자유수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