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18)
국내 부품사 영업이익률 3%대, 글로벌 절반 수준
낮은 수익성 원인…특정 업체 의존도 높고 R&D 역량 부족
2·3차 협력사, 미래차 전환 시작도 못해
R&D 주도권 완성차→협력사로 옮겨가야
부품업계 구조조정 불가피…선별적 정부 지원 필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 리한은 2018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을 신청했다. 연 매출 2000억원이 넘는 1차 부품 협력사가 자금난에 못 이겨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소식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리한은 꾸준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 2023년까지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주력 제품(에어필터)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영업이익이 50억원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 외부에서 자금 조달을 하지 않고서는 단기간(유동 자산·부채 기준 1년)에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 회사의 재무 상황을 감사한 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리한은 한때 매출액이 2000억원에 달하는 견실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수출한 일부 제품의 리콜을 결정하고 현대차와 동반 진출한 중국 사업도 부진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업계는 규모 있는 중견기업이라도 단 한 번의 사업 실패 혹은 실기로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1차 협력사라도 한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인데 2·3차 협력사는 오죽하겠나"며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나 사업 아이템 전환 등은 꿈도 못 꾼다"고 전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대부분 2·3차 협력사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조차 시작 못 했다. 국내 부품 생태계가 무너지면 곧장 완성차 업체에 공급망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엔 이익 배분을 둘러싼 협력사의 파업이 현대차·기아의 또 다른 생산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가 장기간 파업을 하면 완성차 생산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현대트랜시스의 장기 파업으로 현대차·기아는 1조원에 달하는 생산 손실을 입기도 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 생태계의 구조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부품사 영업이익률 3%대, 글로벌의 절반 수준
27일 한국자동차연구원 분석 자료를 보면 국내 전자공시시스템에 등재된 국내 중소 부품기업(매출 1800억원 미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22%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중소기업 평균 대출금리(4.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들 중소 부품기업은 영업활동으로 버는 이익으로 대출이자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다. 결국 이들은 정부 지원과 완성차 업체에 기댄 '좀비기업'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부품업체 평균과 비교해도 국내 부품업계의 이익률은 절반 수준이다. 국내 부품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 내외로 추산된다. 한자연이 국내 대기업 계열 및 중소 부품사까지 모두 합쳐 213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을 조사한 결과 2024년 3.62%, 2023년 3.13%로 집계됐다. 반면 유럽집행위가 발표한 '산업별 R&D 비교'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주요 부품사의 202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6.02%로 나타났다.
완성차와 주요 부품사의 이익률 괴리가 커지는 점도 문제다. 2024년 현대차그룹과 도요타그룹의 주요 6개 부품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을 비교해보자(표 참고). 완성차의 영업이익률은 비슷한 10%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기아가 9.5%(합산), 도요타가 10%였다. 반면 핵심 6개 부품사의 영업이익률은 도요타의 경우 완성차의 절반 수준(5.3%)인 반면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는 완성차의 3분의 1 수준(3.43%)에 그쳤다.
현대차그룹 주요 6개 부품사(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제철·현대케피코·현대트랜시스·현대엠시트)의 합산 영업이익률을 계산해보면 3.43%다. 그나마 부품 계열사의 맏형인 현대모비스(5.37%)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수치를 끌어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대모비스의 캐시카우인 AS 사업 이익이 크게 작용했을 뿐, 핵심 모듈 및 부품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 수준(-0.1%)에 그쳤다. 모비스의 AS 사업부 매출과 이익을 제거하면 현대차그룹 핵심 6개 부품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0.51%까지 떨어진다.
국내 부품사 수익성 낮은 이유
국내 부품사의 낮은 수익성 원인에 대해 완성차 및 부품업계, 연구업계, 노동계 등 각계 인사들을 만나 심도 있게 논의해봤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대목은 국내 부품업계의 현대차·기아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매출 및 R&D 의존도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외 없이 동의한 지점은 지금 같은 구조가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부품업계는 물론 완성차인 현대차·기아에도 희망적이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부품업계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수익률이 낮다 보니 R&D 투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이 없다 보니 완성차 업체와 단가 협상을 통한 수익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계속 돌고 도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익이 우선이냐 기술 투자가 우선이냐 하는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같은 구조는 과거부터 이어온 현대차그룹의 수직 계열화 생산 방식에 기인한다. 완성차가 R&D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신제품을 개발하면 협력사는 완성차의 레시피(설계도)를 그대로 받아 생산 납기와 수율을 맞추는 데만 주력한다. 부품사는 기술 개발은 물론 정보 수집,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 등 사업의 상당 부분을 완성차 업체에 의존하게 된다. 다만 기술 주도권은 여전히 완성차 업체에 있기에 이익률(납품 단가)을 정하는 일은 완성차의 몫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지금 구조에서 부품사는 완성차가 정한 영업이익률에 맞춰 모든 사업을 영위해야 하기에 자체적인 R&D나 경쟁력 확보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완성차와의 거래 관계 유지가 부품사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완성차에 R&D가 집중된 구조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완성차와 부품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한자연이 추산한 2024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R&D 투자 규모는 최소 14조원이다. 이 중 70%가 넘는 금액을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을 나타내는 R&D 집약도를 살펴보면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집약도가 4.26%로 중소 부품사(1.41%)의 3배에 달했다.
특히 규모가 있는 1차 협력사의 경우 완성차의 이익률 통제와 R&D 투자 분담을 병행해야 하기에 이중고에 시달린다.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의 2024년 영업이익률은 3.49%로 비계열 대기업·중견 부품사(3.81%)보다 오히려 낮았다. 2023년에는 계열 부품사 2.52%, 비계열 3.86%로 그 격차가 훨씬 컸다.
미래차 시대, 부품사 역할이 바뀐다
내연기관 시대 수직계열화 방식의 생산 구조는 완성차 업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현대차·기아는 부품 기술 내재화를 통해 기술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기술 유출 가능성도 줄였다. 동시에 부품사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생산 효율성, 원가 절감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부품업계의 입장에서도 일방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단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하고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한 해 완성차 생산 계획이 나오면 부품사들은 규모 있는 사업 계획이 가능했다. 설비 자동화나 스마트 팩토리 등 생산 기술에 대한 자문과 지원도 꾸준히 받았다. 물론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는 수직 계열 구조에서 벌어지는 노사 갈등 문제는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완성차와 부품사의 관계가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완전히 달라진다. 과거엔 기술 개발은 완성차의 몫이었고 부품사는 생산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이제는 기술 개발 초기에서부터 함께 과제를 나누고 공동 개발에 뛰어들 협력 파트너가 필요해졌다.
내연기관 시대 기계공학 위주의 R&D에서는 완성차가 주도권을 가져갔지만 전기차와 SDV 시대에는 완성차가 손댈 수 없는 배터리, 전기·전자, 소프트웨어 등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한 부품사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전기차 시대엔 필요 부품의 수가 내연기관 차에 비해 3분의 2 수준(2만여개)으로 줄어든다. 최근에는 보호주의 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 현지 공급망 위주로 재편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현대차·기아의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 부품사 위주의 공급망 구성을 요구하고 있어 완성차의 고민 또한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품 산업 전반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국내 2·3차 부품사들은 여전히 공작기계를 활용한 내연기관 부품 생산 등에 의존한 업체가 많다. 게다가 2만여개의 국내 부품사 중 10인 미만 영세 사업자는 68%에 달한다. 이들이 단기간에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확보해 체질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한자연의 '2024 자동차 부품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만992개의 국내 자동사 부품사 중에서 현재 사업 전환 계획이나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이 97.9%에 달했다. 이들은 추진 계획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새로운 거래처 및 판로 확보의 어려움(58%)'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내연기관·하드웨어 중심의 국내 부품사에 대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신 핵심 기업을 선택적으로 지원해 생태계의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부품업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월등한 실력 차이가 나는 부품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이항구 한자연 연구위원은 "1만5000개 이상의 국내 부품사 중 30%는 소위 '좀비기업'으로 추정된다"며 "핵심 역량을 보유한 300개 사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구조 조정과 구조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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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에서 비계열사 중심의 1차 부품사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해외 완성차 업체에 적극적으로 수주가 가능하고 원천 기술을 보유한 비계열 부품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의 R&D 투자에서 현대차·기아의 의존도를 낮추고, 비계열 대기업 부품사의 성장으로 2·3차 업체까지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구조가 지금보단 훨씬 건강한 구조라는 판단에서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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