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현지 공장 가동 중단
유가 하락 등으로 사우디 재정 악화
삼성물산 등 국내 시공사 차질도 불가피
수도 리야드 수주 건에도 회의적 시선
800억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성신양회가 1년6개월 만에 현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가 하락과 사업비 증가로 사우디 정부의 재정 여건이 크게 악화해 프로젝트의 정상적인 추진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것으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등 현지에 진출해 있는 다른 기업들의 연쇄적 철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성신양회는 사우디 타북 지역에서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관련해 운영하던 레미콘 공장을 지난 1월 가동 중단하고 현지 인력을 일부 철수시켰다.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네옴시티는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인근에 있는 2만6500㎢(서울의 44배) 면적의 토지를 저탄소 스마트시티로 개발하는 것이 뼈대다. 170㎞의 직선 도시 '더 라인', 바다 위 첨단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 크게 3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며 총사업비는 1조달러(1390조원)에 달한다.
성신양회는 2023년 사우디 현지 법인인 '진성인더스트리얼'을 설립하며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여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삼성물산과 800억원 규모의 공사 계약을 체결한 뒤 네옴시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더 라인의 '러닝 터널(SNRT)' 공사 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해왔다.
이는 앞선 2022년 6월,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이 10억달러(1조3900억원) 규모의 네옴시티 러닝 터널 공사를 수주한 데 따른 조치다. 러닝 터널은 더 라인에 있는 총길이 28㎞의 지하 터널로, 완공되면 고속 및 화물 철로로 이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유가의 하락으로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재정 상황이 나빠지고 외국인 투자 감소, 예상 사업비 증가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던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돼왔다. 발주처의 자금 조달 능력이 약화함에 따라 공사의 지연이 거듭되는 걸 넘어 사실상 멈춰버린 지경에 이르면서 국내 시공사들의 활동에도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는 결국 국내 기업으론 유일하게 현지에서 레미콘을 공급하던 성신양회의 사업 중단으로 이어졌다. 다만, 성신양회는 현지에서 러닝 터널 사업 이외의 다른 수주는 계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네옴시티가 '슬로다운(공사가 지연되는 상황)'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며 계획대로 준공하긴 어려워 보인다"며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대회를 앞둔 사우디가 최근 네옴시티보다 스포츠 이벤트를 국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점도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시멘트 사는 네옴시티 대신 사우디 리야드로 눈을 돌려 추가 수주 건을 물색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재정 압박과 유가 변동 등으로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사우디는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현지 인프라와 경기장 건설에 필요한 해외 발주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회는 분명히 있지만 단기적 대규모 수주나 안정적인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재정 압박과 불확실성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성사된다고 해도 계약이 지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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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철수 가능성도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다. 사우디 정부가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접은 게 아닌 만큼 사업 자체가 종결되는 건 아니지만 정상적인 공사의 진행이 어려워진 터라 일단 현지에서 빠졌다가 향후 사우디 정부나 중동 지역의 정세 같은 사정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판단을 내리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어서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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