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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엘리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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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설 '시민 없는 민주주의'
특권층이 의사결정 권한 쥔 한국
대통령 독주 막을 법규 없어
尹탄핵 주체도 국민 아닌 사법부
한계 드러낸 대의민주주의 딜레마

피로 민주화를 이룬 21세기 한국 사회에 2025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책 어때]"엘리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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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는 "근대 민주주의 기초로 삼권분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한국 법은 대통령의 일방적 독주를 막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개인에게 과도한 힘을 부여했다고 우려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됐다. 헌재는 탄핵 결정문에서 이를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에 명백히 반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등 헌법상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 판단했다. 헌재가 견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 교수는 탄핵의 주체가 국민이 아닌 사법부였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했던 상황 역시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에도 조선 시대처럼 청원하고 호소해야 했던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한국 사회를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규정한다. 외형은 민주주의를 갖췄지만 실질적으로는 시민이 아닌 특권적 엘리트가 의사결정 권한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선거제도와 정당 구조의 문제로 인해 시민의 목소리는 주요 현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시민이 공동체의 지배자가 되는 정치 체제로,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고 강조한다. 복잡한 결정 과정, 다수의 횡포, 전문성 부족 등의 한계가 있음에도 민주주의 이상을 대체할 마땅한 체제는 없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대의제를 전면 부정하지 않지만 시민의 직접 참여와 의사 반영이 보장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대 아테나가 행정관과 재판관을 추첨으로 선발했던 예를 들어 핵심 권한을 소수 전문가가 독점하는 시스템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아테네인들은 재능 있는 개인에게 전권을 부여하면 결국 사익을 위해 복무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그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재판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00년 전 민주주의를 연구한 토크빌이 "한 사회의 실질적 주인은 범죄자를 재판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주장에 동조하며 어떤 일을 최종적으로 판단 내리는 과정에 일반 시민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 당시 20일 만에 마련한 헌법에는 국민 참여 조항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해외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책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법관의 자격을 명시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로 구성될지언정 특권층으로만 구성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또한 미국은 법원 고위직의 90% 이상이 선출직이다. 중범죄의 경우 의무적으로 배심원이 참여해 유무죄 판결에 개입하도록 한다. 검사 선임·징계 절차도 시민 주도로 이뤄진다.


일본 역시 시민 참여 제도를 운영 중이다. 2009년부터 기소에 시민이 참여하는 검찰심사회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했고, 실제로 시행 이듬해 검찰에 의해 불기소된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전 간사장을 직접 기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일본 내에서 뇌물범죄나 직권남용에 대처하는 유용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중대 범죄를 판결하는 9명 합의체에는 의무적으로 시민 재판원 6명을 포함하도록 했다. 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재판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처음으로 시민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시민이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 교수는 이 밖에도 국내에 존재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국민 80% 이상이 찬성한 조력존엄사법이 "소수 전문가의 비민주적 결정"으로 가로막힌 상황 등을 거론하며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며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전문가가 판단을 독점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이 책 어때]"엘리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일각에서는 비전문가의 참여가 전문성과 효율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그는 "시민 법관이 서툴러서 잘못 판단을 내리는 것과 전문 법관이 알고도 잘못 판단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공동체에 더 큰 해악을 끼치느냐"며 "전문성 등을 핑계로 시민을 사법 영역에서 배제하는 일은 신입사원을 뽑아서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경력사원이 한 명도 없는데 경력사원만 뽑겠다고 고집하는 회사와 같다"고 비유한다.


정 교수는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짚되 현실적인 대안과 제도 개선의 방향을 해외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민주주의 체제의 본질과 가능성에 집중한 논의는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시의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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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없는 민주주의 |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64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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