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탕 서울, 전광영 개인전 '타임 블러섬'
한지로 삼각형 감싼 동양적 입체미 선봬
손녀 영향, 회색빛에서 파스텔톤으로 변화
입체미 절제한 '폼' 시리즈 첫 공개
수십, 수백 개의 삼각형 조각들이 거대한 사각형의 틀을 채워 독특한 입체감을 표출한다. 삼각형 조각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사각형의 작품은 개인과 집단, 전통과 현대, 혼돈과 질서 사이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전광영 작가는 30년째 '집합'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한지로 만든 고서(古書)를 삼각형 조각에 씌우고, 다시 한지로 만든 끈으로 고정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만든 계기는 1971년 미국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한국적 정체성을 작품에 담아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다. 그렇게 '집합' 시리즈는 1995년부터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단, 이번 전시에선 작품에 큰 변화가 일었다. 그간의 작업은 회색빛 일색이었으나, 이번 전시에선 처음으로 빨강, 파랑, 초록 등 다양한 파스텔 빛깔을 적용했다.
작품세계에 변화가 일었다는 건 심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웠던 작품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채워진 건 손녀와의 교감이 원인이 됐다. 올해 81세인 전 작가는 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최근, 다양한 색채를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페로탕 서울에서 선보이는 이번 '타임 블러썸' 전시는 그간의 전시와 차별화된다.
작품은 천연 재료를 이용해 물을 들였다. 감물, 먹, 황토, 쑥, 울금, 석류 껍질, 연지 등을 자연에서 채취해 천연염료를 만들고, 이를 고서와 한지의 물성에 결합시켰다. 파스텔 계열의 색조는 여린 감정과 부드러운 시간의 결을 상징한다. 서양의 포장이 박스 문화라면 동양은 보자기 문화임을 고려해 약재를 달이는 정성과 보자기를 감싸는 정감으로 한지로 끈을 만들어 삼각형 조각을 감쌌다. 이는 시간을 다루는 행위에 가까운데, 그렇게 손으로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며 색으로 정서의 층위를 조율한다. '타임 블러썸(시간의 꽃)'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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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선 '감싸 안는다'는 의미를 지닌 '품' 작품을 '집합' 시리즈의 연작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품은 입체적 밀도를 잠시 내려놓고 정제된 평면 위에 삼각형을 리듬감 있게 포개어 고요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시간이 고요히 응결된 느낌을 풍기는데, 이는 관람자에게 잠시 멈춰서서 용납되고 수용되는 정서적 느낌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전광영 작가는 "에너지를 발산하기보다 차분하게 소통하고 싶었다"며 "조각적 물성보다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해 정서적 치유를 이루는 바다같이 느껴지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7월5일까지.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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