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다시 '사는 기업'으로…8년 만에 대형 인수
B&W부터 마란츠까지…오디오 명가 한손에
카오디오 전략 강화…B&W로 초고급차 진입 노려
삼성 제품 전반에 오디오 기술 내재화 가속
하만 인수 이후 8년…삼성 M&A 전략, 다시 움직인다
AI·헬스케어·유통까지…기술 생태계 확장에 방점
삼성전자가 글로벌 오디오 명가(名家)를 품에 안고, 8년 만에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에 복귀했다.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인수한 이번 거래는 단순한 브랜드 보강을 넘어, 오디오 기술 내재화와 전방위 제품 생태계 강화에 방점을 찍은 '빅딜'로 평가된다.
하이엔드 브랜드 B&W를 포함한 데논, 마란츠 등 프리미엄 오디오 포트폴리오를 한꺼번에 확보하며 하만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오디오 명가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B&W는 1966년 영국에서 설립돼 유려한 디자인과 정교한 사운드 기술로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을 대표해왔으며, 대표작인 '노틸러스'는 개당 1억5000만원에 이른다. 데논은 상업용 CD플레이어의 시초로 평가받고, 마란츠는 앰프와 리시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만은 이번 인수를 통해 컨슈머 오디오뿐 아니라 차량용 오디오 시장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하만은 B&W를 확보하면서 차량별 사운드 차별화 전략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뱅앤드올룹슨(B&O) 등 경쟁 브랜드를 견제할 수 있는 명확한 카드도 손에 넣었다.
쉽게 말해 하만카돈이 프리미엄 대중차 중심의 고급 오디오 브랜드라면, 이번에 인수한 B&W는 고급 오디오 애호가와 전문가 시장을 겨냥한 하이엔드 브랜드로 분류된다. 실제로 하만카돈은 BMW, 현대차, 폭스바겐 등 중상위급 차량에 주로 탑재되며, B&W는 BMW 7시리즈나 볼보 XC90 등 럭셔리 플래그십 모델에 들어가는 브랜드다.
오디오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 재료, 가격 면에서도 B&W는 고급차 고객을 겨냥한 전용 사운드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만이 이번 인수로 B&W를 직접 품게 되면서, 기존 하만카돈이나 JBL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초고급 럭셔리 차량 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만은 이미 전 세계 5000만대 이상의 차량에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와 아테온, 포드 머스탱과 F-150,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제네시스 GV80 같은 고급차에 하만 브랜드 오디오가 들어가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하만을 통해 B&W, 데논, 마란츠까지 손에 넣으면서 오디오 분야에서 사실상 '풀 세트'를 갖추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은 고급 오디오 기술을 스마트폰, TV, 사운드바, 무선 이어폰 등 제품 생태계 전반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소비자경험(CX)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른 '사운드'를 삼성 전 제품군에 녹이기 위한 포석이다. 특히 삼성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도 유기적으로 연계돼 사용자 환경에 따라 음향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지능형 오디오 경험도 가능해진다.
이번 거래는 삼성전자가 2017년 약 9조원을 투자해 하만을 인수한 이후 사실상 첫 대형 M&A로, 단순한 일회성 브랜드 보강을 넘어 제품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기술 내재화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미래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과 전문 기업을 인수해 왔다. 단발성 M&A가 아닌 기술 내재화와 제품 생태계 확장을 위한 연속적인 전략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16년 캐나다의 차세대 통신 기술 기업 '뉴넷 캐나다'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그리스의 음성합성 기술 스타트업 '이노틱스'와 국내 챗봇 기업 '플런티'를 인수하며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강화를 본격화했다.
이후에도 네트워크 품질 분석 솔루션 '지랩스', 멀티카메라 기술의 '코어포토닉스', AI 기반 식품 분석 스타트업 '푸디언트', 통신망 설계 전문 기업 '텔레월드 솔루션즈'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디바이스 중심에서 통신·AI 기술 내재화로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2023년부터는 하만을 통해 차량 내 전장 기술 고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독일 AR 헤드업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기업 '아포스테라', 고해상도 오디오 플랫폼 '룬'을 차례로 인수했다.
2024년에는 삼성메디슨이 프랑스 산부인과 영상 진단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도 발을 넓혔고, 북미 유통망을 활용한 레녹스와의 합작법인, 지식 그래프 기술 기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편입으로 유통·지식정보·데이터 기반 확장성까지 확보했다.
이러한 M&A 흐름은 단순히 기술 확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강자의 위치에서 AI, 데이터, 콘텐츠 기술을 입혀 '초연결 제품 플랫폼'을 구현하려는 전략적 전환의 일환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오디오 사업 인수를 신호탄으로, 삼성전자가 향후 로봇, 생성형 AI, 디지털 헬스케어 등 차세대 핵심 플랫폼 기술을 중심으로 한 M&A에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다시 '사는 기업'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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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관계자는 "제품 중심 전략을 넘어 생태계 기반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전략적 M&A를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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