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학창 시절 은인 김장하 선생과 만나
"재판관 이견 있는 상태로 국민 설득 못해"
"소수 의견조차 선고문에 담아내려 조율"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문을 낭독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헌재의 선고가 늦어진 것에 대해 "오래 걸린 건 말 그대로 만장일치를 좀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라며 "시간이 조금 늦더라도 만장일치를 하는 게 좋겠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7일 MBC경남과 경남도민일보 등 지역 언론은 문 전 대행이 지난 2일 학창 시절 은인으로 알려진 '어른' 김장하 선생을 찾아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는 38일 만에 이뤄져 노무현 전 대통령(14일)과 박근혜 전 대통령(11일) 사건과 비교해 최장기간 평의를 기록했다.
보도에 따르면 문 전 대행은 "이런 주제(대통령 탄핵)를 가지고 재판관끼리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국민을 설득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고, 사안 자체가 (만장일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만약 몇 대 몇으로 나오면, 소수 의견으로 다수 의견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수 의견조차도 (선고문에) 담아내려고 조율했다"고 말했다.
또 "사건을 보자마자 결론이 서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검토해야 결론을 내는 사람도 있다"며 "그 경우에는 당연히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빠른 사람과 급한 사람들이 인내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17일 인하대 강연에서도 "야당에 적용되는 권리가 여당에도 적용돼야 하고 여당에 인정되는 절제가 야당에도 인정돼야 그것이 통합"이라며 "나에게 적용되는 원칙과 너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다르면 어떻게 통합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그 통합을 우리가 좀 고수해보자. 그게 탄핵선고문의 제목"이라며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문 전 대행과 만난 김 선생은 진주에서 약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기부와 선행을 이어온 지역 독지가다. 평생 베풂을 실천한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와 서적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문 전 대행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이른바 '김장하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19년 국회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김 선생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은 '고마워할 필요 없다.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사회에 갚아라'고 했고,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김 선생은 문 전 대행에게 "다수결이 민주주의 꽃이라 그러는데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문 전 대행은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의 뜻을 세워나가는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그런 체제가 가능한 게 민주주의라 생각하고, 이번 탄핵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문 전 대행은 자신이 법률가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연수원 다닐 때 인권변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군대 3년을 가서 보니 사회가 좀 바뀌었고 노태우가 당선된 나라에서 김영삼이 다스리는 나라로 바뀐 거 같았고 인권변호사가 너무 힘들 것 같더라"라며 "제가 자신이 없었다.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했을 때 끝이 안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선이 뭔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역 법관"이라며 "부산에 가서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내 뜻대로 해보자. 지방에서 문화 정치 행정을 만들어야지, 전부 다 서울 가서 하는 게 좀 못마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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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보 보수 갈등보다는 덜 하겠지만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역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서울 사람이나 진주 사람이나 다 소중한 사람들인데 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조차 서울에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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