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문 75%·자동차 62%
'계속 고용'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
기술적응력·구조개편 유연성 중시
금융업 84% 건설업 63% 연장 찬성
조직의 연속성·안정성 높인다는 판단
정년을 만 6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두고 경제계에선 업종에 따라 입장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에서는 기술 변화 속도와 생산성 유지를 이유로 제도 도입에 신중한 반응이 많았고, 금융·건설·물류 등에서는 숙련 인력의 경험과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찬성 의견이 우세했다. 고령 인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기술 적응력과 조직 역동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아시아경제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101개사를 대상으로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한 '정년연장(65세) 관련 기업 현황 및 제도 수요조사'에 따르면 제조업과 비제조업 간의 응답에선 온도차가 극명했다. 산업별 인력 구조와 기술 변화 대응 역량이 정년연장에 대한 태도를 가르는 주요 변수로 해석할 수 있다.
업종별로는 중후장대 산업을 중심으로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반도체 75.0%, 자동차 부문에선 62.5% 기업이 계속 고용에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철강·조선 분야에서도 절반 이상(60.0%) 기업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기·전자·전지 업종도 58.3%가 부정적 의견을 냈다. 석유화학·화학제품 업종에서도 57.1%가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해 전체 평균(39.6%)보다 크게 웃돌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반도체 기업의 66.7%가 '인사적체 및 직급 정체'를 반대 이유로 꼽았다. 자동차 업종에선 '청년층 신규 채용 여력 축소'(50.0%)를, 철강·조선 기업도 40.0%가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 업종은 기술 변화가 빠른 만큼 고령 인력이 조직 내에 장기간 잔류할 경우 인사 흐름이 막히고 신규 인력 채용이 어려워지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자동화가 고도화된 산업 특성상 정년연장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고령 인력의 숙련도는 인정하지만 기술 적응력과 구조 개편의 유연성이 더 중요한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정년연장을 지지한 업종들도 뚜렷한 특성을 드러냈다. 금융업은 전체 19개 응답 기업 중 84.2%가 정년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임대·도매·물류업(80.0%), 건설업(63.6%), 정보통신업(66.7%)도 필요하다고 본 비율이 높았다.
이들 업종은 상대적으로 육체노동 부담이 적고 리스크관리, 자산운용, 내부통제 등 경험 기반의 직무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령 인력의 지속 고용이 조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높인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응답으로 풀이된다.
정년연장을 지지한 기업들이 선택한 이유 중 가장 높은 비중은 '고령 인력의 숙련도 유지'(41.0%)였다. 이어 '특정 직무 분야에서 인력 수요 지속'(19.7%), '조직 내 기술 전수 가능'(18.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업에서는 '고령 인력의 숙련도 유지'(56.3%)를 주요 이유로 꼽은 기업이 절반을 넘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년이 정해져 있어도 이미 55세 전후에 명예퇴직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정년이 연장되면 숙련된 인력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신 심사나 감사, 리스크 관리처럼 경력을 바탕으로 한 업무가 많아 숙련된 인력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제조업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만 60세 정년 도달 시 곧바로 퇴직 처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8.4%가 '정년 이후 별도 재고용 없이 퇴직 처리한다'고 답했다. 60세 이후 일정 기간 계약직(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기업은 35.6%에 그쳤다.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운영하는 곳은 3.0%, 정년이 아예 없는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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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응답에서는 "정년 이후 재고용은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자문 형태나 프로젝트 단위로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복돼 고령 인력 운용에 대한 기업들의 신중한 태도가 엿보였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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